최종편집시간 : 2017년 11월 25일 10:46
EBN
EBN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뉴스스탠드
실시간 News

최악 기름유출 ‘엑슨 발데즈’호의 기구한 여정

알래스카 해역 기름유출 사고 장본인…인도 폐선장 입항 금지 당해
멕시코만 사고로 ‘안전제일주의’ 확산…해양플랜트 시장 진출 어려워

신주식 기자 (winean@ebn.co.kr)

등록 : 2012-05-12 21:59

지난 1989년 사상 최악의 기름유출 사고라는 오명을 받으며 단일선체유조선 규제를 촉발시켰던 ‘엑슨 발데즈(Exxon Valdez)’호가 기구한 생애의 마지막도 뜻대로 하지 못하게 됐다.

13일 로이드리스트를 비롯한 외신에 따르면 최근 인도 대법원은 21만4천DWT급 벌크선 ‘오리엔탈 니체티(Oriental Nicety)’호가 선박 해체를 위해 인도 알랑에 위치한 폐선장에 접안하는 것을 거부했다.

인도 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인도 과학·생태 연구재단인 RFS(Research Foundation for Science)가 지난 1989년 4천200만ℓ(약 26만bbl)의 기름을 유출하는 사고를 일으켰던 이 선박이 독성물질을 포함하고 있어 이를 모두 제거하기 전까지는 폐선장에 접안하면 안 된다는 소장을 제출한데 따른 것이다.

지난 3월 말 ldt당 460 달러, 총 1천580만 달러에 매각된 것으로 알려진 이 선박은 오는 8월 13일 인도 대법원이 개최하는 공청회 결과에 따라 행선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1986년 제작된 이 선박의 당시 이름은 ‘엑슨 발데즈(Exxon Valdez)’호로 해양 기름유출 사고 관련해서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다.

1989년 3월 23일 2억ℓ의 원유를 싣고 청정해역인 미국 알래스카 인근 프린스 윌리엄 해협을 지나가던 이 선박은 암초에 부딪히며 엄청난 양의 원유를 바다에 유출시켰다.

이 사고로 약 50만 마리의 바다새와 수백 마리의 바다표범이 몰살되고 연어 산란지가 파괴되는 등 이 지역 어업은 치명타를 입었으며 선주사인 엑슨(Exxon)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은 사고 발생 이후 19년 만인 2008년 6월에서야 마무리됐다.

2008년 6월 25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알래스카 해안에 5억 달러 규모의 피해를 입힌 ‘엑슨 발데즈’호에 25억 달러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선고했으며 피해지역 청소와 소송처리를 위해 20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쏟아 부은 엑슨모빌(엑슨이 1999년 모빌을 인수해 엑슨모빌로 사명 변경)의 손해배상액도 그만큼 늘어나게 됐다.

‘엑손 발데즈’호는 이 사건 이후 선박 수리를 마친 지난 1990년 7월 ‘엑손 메디테리니언(Exxon Mediterranean)’호로 선명을 바꾼 것을 시작으로 ‘S/R 메디테리니언(S/R Mediterranean)’호, ‘메디테리니언(Mediterranean)’호 등으로 여러 차례 선명이 변경됐다.

이후 지난 2007년 12월 중국 코스코(Cosco) 자회사인 홍콩블룸시핑(Hong Kong Bloom Shipping)에 3천200만 달러에 매각되며 유조선에서 벌크선으로 개조됐다. 2007년 12월은 우리나라 최악의 기름유출 사고로 기록된 태안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한 때이기도 하다.

‘엑슨 발데즈’호 사건 이후 국제해사기구(IMO)는 이와 같은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모든 유조선을 이중선체유조선(Double Hull Tanker)으로 바꾸고 단일선체유조선(Single Hull Tanker)은 퇴출시킨다는 규제안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와 중국도 올해부터 단일선체유조선의 국내 입항을 전면 금지하고 있으며 일부 선사들은 선령이 오래되지 않은 단일선체유조선을 벌크선이나 FSO(부유식 원유 저장·하역설비)로 개조하는 등 IMO 규제에 대응하고 있다.

‘엑슨 발데즈’호 사고 당시 사고방지대책 소홀과 방제기술 부족 등으로 언론의 비난을 받았던 오일메이저들과 규제당국은 지난 2010년 4월 20일 이를 능가하는 멕시코만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하면서 다시 한 번 비난의 대상이 됐다.

멕시코만 마콘도(Macondo) 유정에서 원유 생산작업을 하던 심해 석유시추선 ‘딥워터 호라이즌(Deepwater Horizon)’호가 폭발하면서 생긴 이 사고로 작업 중이던 근로자 11명이 사망했으며 기름유출은 5개월이 지난 9월 19일까지 지속됐다.

이 사고로 유출된 원유는 500만 배럴 이상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엑슨 발데즈’호 사고로 유출된 원유보다 20배 이상 많은 양이다.

이를 계기로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던 오일메이저들의 안전지향주의는 더욱 강해졌으며 모든 해양설비에 대해 그동안 다수의 프로젝트에서 안전성을 검증 받은 제품만을 사용하려는 경향도 강해졌다.

이로 인해 프로젝트 실적이 없는 국내 조선업계의 해양플랜트 및 해저생산설비(Subsea) 시장 진출은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최근 해양플랜트 시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난해 257억 달러 규모였던 해양플랜트 수주액을 오는 2020년까지 800억 달러로 늘린다는 해양플랜트 육성방안을 발표했으나 보수적인 성향이 더욱 강해진 오일메이저들이 국내 기업에 해양플랜트 설비를 발주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1천m 이내의 대륙붕에서 이뤄지던 해양 프로젝트가 최근에는 2천m 이상의 심해까지 진출함에 따라 더 높은 기술력과 안전성이 요구되고 있다”며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할 경우 피해보상 규모가 수백억 달러에 달하기 때문에 오일메이저들은 장기간에 걸쳐 사용함으로써 안전성이 입증된 제품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국내 조선업계와 기자재업계가 해양플랜트 시장 진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프로젝트 수행실적을 축적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며 “우리나라 정부가 해양프로젝트를 추진하고 국내 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이 프로젝트에 적용한다면 국내 조선업계 및 기자재업계의 해외시장 진출도 더 빨리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