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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중소 조선사 "이젠 생존이 지상과제"

성동조선, 참치선 등 틈새시장 공략으로 위기 극복 나서
대부분의 중소조선사는 수주 전무·RG 거부로 파산 위기

신주식 기자 (winean@ebn.co.kr)

등록 : 2012-07-31 15:48

▲ 성동조선해양이 국내 최초로 건조한 참치선망선 ‘사조 콜롬비아’호 전경.

“삼호조선과 신아SB, 21세기조선 등 통영에 나란히 위치한 이들 3개 중소조선사는 조선업계 호황기 당시만 해도 주력선종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인정받았어요. 하지만 2008년 이후로 수주가 끊기면서 삼호조선은 결국 파산했고 신아SB는 4년 만에 LOI를 체결해도 은행이 RG 발급을 거부해 수주가 무산될 위기에 처한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얼마 전 통영을 찾은 기자를 만난 한 업계 관계자는 36℃에 달하는 무더위 탓인지, 아니면 장기화되고 있는 수주가뭄 탓인지 지친 표정을 지으며 이와 같이 설명했다.

강렬한 태양 아래 아른거리는 이들 조선사의 텅 빈 도크는 넘치는 일감에 분주했던 모습이 언제였는지 모를 정도로 아득한 기분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지난 26일 경남 통영에 위치한 성동조선해양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사조산업이 발주한 1천900t급 참치선망선 ‘사조 콜롬비아’호의 명명식이 개최된 것.

선박 대형화가 트렌드로 자리 잡은 시점에서 1천900t에 불과한 이 선박은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참치를 잡고 신선한 상태로 운송하기 높은 기술력을 요구하고 있다.

이갑숙 사조산업 대표는 “참치선망선은 참치선 중에서도 가장 높은 기술력과 설비가 있어야 건조할 수 있는 선박”이라며 “사조산업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참치선단이 노후화돼 교체수요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셔틀탱커, FSO(부유식 원유 저장·하역 설비)를 수주하며 해양플랜트 시장에 진출한 성동조선은 올해 들어 가축운반선(Livestock Carrier)이라는 다소 생소한 종류의 선박을 수주하는데 성공했다.

가축운반선은 기존 일반 상선을 개조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최근 가축보호를 위한 규정이 강화되면서 환기, 사료공급 시스템 등 최신 설비 장착이 의무화되고 있다.

특히 육식도 이슬람 율법대로 도축된 고기가 아니면 먹을 수 없도록 하는 하랄(Halal) 문화로 인해 가축운반선의 신조 수요는 앞으로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성동조선은 장기화되고 있는 조선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벌크선, 컨테이너선 등 기존 일반 상선 뿐 아니라 이와 같은 틈새시장 공략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반면 다른 중소조선사들은 올해도 단 한 건의 수주실적 없이 여전히 힘든 시기를 겪고 있으며 일부 조선사는 결국 파산절차에 들어갔다.

지난 2월 경남 통영에 위치한 삼호조선이 파산한데 이어 3월에는 52년의 역사를 가진 세광중공업도 청산절차에 들어갔다.

삼호조선과 나란히 위치한 신아SB는 지난 5월 유럽 선사와 MR탱커 6척 수주를 위한 의향서(LOI)를 체결함으로써 2008년 이후 약 4년 만에 수주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으나 아직까지 본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 신아SB 조선소 전경.

신아SB가 의향서를 체결하고도 선박을 수주하지 못하는 이유는 금융권에서 선박 수주에 필요한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을 거부한데 따른 것이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메이저 조선사 뿐 아니라 대다수의 중소조선사들도 RG를 발급받지 못해 선박을 수주하지 못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메이저 조선사들까지 수주가뭄에 시달리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은행들은 경기불안을 이유로 RG 발급 심사를 점점 더 엄격하게 실시했고 중소조선사들에 대해서는 더욱 발급 기준이 까다로웠다.

수주난에 이어 수주건을 확보하더라도 RG 발급에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중소조선사들의 은행에 대한 불신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다른 업계와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중소조선사들이 은행의 반강제적인 권유로 가입한 파생금융상품 ‘키코(KIKO)’로 큰 손실을 입은 상황에서 은행들이 이에 따른 자금유동성 문제를 거론하며 RG 발급을 거부하는 것은 이익만 챙기고 책임은 질 수 없다는 금융권의 비윤리적인 행태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선주사와의 계약으로 RG 발급이 시급한 상황에서 은행이 키코 가입을 권하면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중소조선사가 과연 있겠나”라며 “재무 전문가가 없는 어느 조선사에서는 대리 직급의 직원이 키코 가입서를 작성해 제출했다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서민이 전세자금 대출을 위해 찾아간 자리에서 대출 담당자가 내미는 신용카드 가입신청서를 거부하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로 중소조선사들은 이런 ‘키코 꺾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키코 가입은 조선사들이 자발적으로 신청해 이뤄진 것이며 은행으로서도 키코 상품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익의 일부를 가져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를 강제적으로 권유할 일도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당시 키코 상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 상품에 가입하는 기업고객들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은행이 이 금융상품으로 인해 이득을 얻는 부분이 없기 때문에 키코 가입을 강요할 이유는 없으며 강요한 사례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조선업계에서는 부채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재무구조와 현재의 시장상황 등을 고려해달라고 하나 우리로서는 재무상태와 수익성을 기준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따라서 부채비율이 높고 호황기 대비 30% 이상 떨어진 선가에 선박 수주에 나서는 조선사에 RG를 발급해주는 것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이 힘든 시기에 선박 수주를 위한 RG 발급마저 여의치 않게 되면서 중소조선사들은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지상과제가 되고 있다.

특히 수천명의 근로자가 일하는 조선소는 조선소가 위치한 지역경제에도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지역에서도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조선소를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은행이 RG 발급을 거부하는 것은 이곳에서 일하는 수천명의 근로자들에게 집으로 가라고 하는 것과 같다”며 “지자체에서도 예산부족만 탓할 것이 아니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