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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의 파바로티’, 꿈을 위해 필요한 건 ‘도전’

대한조선 오세형 부장, 오페라로 근로자 가요제 대상 수상
꿈과 재능기부 위한 도전 지속 “성악의 길 택한 아들 뿌듯”

신주식 기자 (winean@ebn.co.kr)

등록 : 2014-06-03 18:30

▲ 오세형 대한조선 부장.ⓒ대한조선

“나이 50이 되기 전에 다시 한 번 내 꿈에 도전해보겠다는 목표를 약간이나마 이루게 된 것 같아서 뿌듯합니다. 앞으로는 제가 가진 재능이 회사와 지역사회를 풍성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목포 나폴리의 파바로티’를 꿈꾸고 있다는 오세형 대한조선 부장(종합설계팀)은 근로자가요제 대상 수상의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인하대 선박해양공학과 졸업 이후 조선업계에 몸담고 있긴 하나 성악가로서의 꿈을 간직하고 살아온 오 부장은 이번 근로자가요제 수상을 계기로 앞으로도 더 많은 도전에 나서겠다는 각오다.

지난달 29일 전남 해남에 위치한 대한조선에서 만난 오 부장은 근로자가요제에 참가했을 때 자신이 나올 자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색했다며 웃어보였다.

오 부장은 “근로자가요제에 가요나 팝송이 아닌 오페라를 들고 나온 사람도 제가 처음이었고 본선 대회에 나가보니 참가자들이 다들 저보다 한참 어린 친구들이었다”며 “다른 참가자들처럼 많은 사람들이 아는 곡으로 할까 고민도 했었지만 내가 가장 원하고 부르고 싶은 곡을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에 오페라 토스카 중 ‘오묘한 조화’를 선곡하게 됐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가 집에서 연주하는 풍금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성장한 오 부장은 정식 레슨을 받아본 적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시절 음악선생님이 성악을 권유할 정도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인해 성악에 대한 꿈을 접고 인하대학교 선박해양공학과에 진학한 후 현대삼호중공업 전신인 한라중공업 종합설계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오 부장은 “성악을 하고 싶다는 말에 아버지께서는 진학할 대학과 학과까지 정해주시며 완강하게 반대하셨다”며 “결국 아버지의 말씀대로 진학하고 조선업계에 몸담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지기만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오 부장은 아내가 음대 피아노과를 입학하게 되면서 다시 한 번 꿈을 이루기 위한 도전에 나섰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임웅균 교수를 찾아가 다짜고짜 오디션을 청한 것.

임 교수는 일면식도 없는 오 부장의 노래를 듣고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이탈리아 유학을 권했는데 정식으로 레슨을 받고 음대를 나오지 않은 사람이 이탈리아 유학에 나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탈리아 대사관에서는 일정기간 이상 정식 레슨을 받고 음대 교수의 공증 추천서가 있어야 유학이 가능하다며 오 부장의 유학신청을 거부했는데 임 교수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겨우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직장을 관두고 1998년 가족들과 함께 유학길에 올랐으나 오 부장의 유학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 근로자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오세형 부장이 가족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대한조선
6년 반에 걸친 유학생활 중 초기 3년 정도는 악성 축농증과 싸워야 했고 정식 레슨을 받아본 적이 없다보니 그동안 모르고 지나쳤던 기본기를 익히는 일에도 매달려야 했다. 이후 3년간 공부에 매달렸으나 IMF를 지나면서 힘들어진 경제상황으로 인해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귀국해야 했다.

이탈리아에서의 공부를 끝마치지 못하고 귀국한 오 부장은 본업으로 돌아가 대한조선에 입사했다. 하지만 나이 50이 되기 전에 조금이나마 꿈을 이뤄보겠다는 목표를 세운 오 부장은 아내의 격려에 힘입어 첫 번째 도전으로 근로자가요제를 선택하게 됐다.

이미 일반적인 아마추어로 보기 힘든 실력을 갖고 있는 오 부장이었으나 8년간 일에 매달리다 다시 노래를 시작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원래 담배도 피지 않는데다 술도 많이 안하는 편이라 남들보다 목 관리가 수월한 부분도 있긴 했으나 그래도 이탈리아에서 공부할 때의 컨디션과 실력을 되찾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으며 마땅한 연습장소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연습실이 절실했던 오 부장에게 조선소 기숙사 옆에 있는 대강당을 활용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오 부장은 “특성 상 오페라는 더 큰 성량으로 불러야 하는데 집에서 연습하는 것도 어렵고 일을 하면서 따로 연습실을 빌리는 것도 효율적이지 못했다”며 “하지만 회사 대강당은 평일에 사용하지 않는 날이 많은데다 실제 공연도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에 연습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 꿈을 조금이나마 이룬다는 것 때문에 가요제에서 상을 받아야 한다는 욕심은 없었고 특별상이라도 받으면 기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는 오 부장은 “하지만 장려상, 동상, 은상 수상자 발표에서도 내 이름이 호명되지 않아 약간 아쉬운 마음은 들었다”며 웃어보였다.

뜻하지 않게 대상을 받으며 유명세를 치른 오 부장은 앞으로 자신의 꿈을 좀 더 이루기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이와 함께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몸담고 있는 회사와 지역사회가 더욱 풍요로울 수 있다면 기꺼이 나서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오 부장은 “가요제 이후 작으나마 이런 저런 행사에서 초대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며 “앞으로 또 다른 가요제에 나서게 되면 ‘네순도르마’처럼 사람들에게 익숙한 곡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자녀로는 아들이 하나 있는데 얼마 전 음대에 진학해 성악을 전공하고 있다”며 “이탈리아 유학 때 부모와 함께 바이올린을 공부했던 아들이 어릴 적 자신이 못 이룬 꿈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한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