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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드릴십과 인도 LNG선

신주식 기자 (winean@ebn.co.kr)

등록 : 2015-05-18 17:53

▲ ⓒEBN
지난 2008년 삼성중공업은 브라질 최대조선소인 EAS(Estaleiro Atlantico Sul)의 지분 10%를 2천200만 달러에 매입했습니다.

삼성중공업은 이 조선소의 건설부터 첫 번째 선박인 수에즈막스급 유조선 ‘주앙 칸디도(Joao Candido)’호 진수까지 기술지원에 나서며 브라질 조선시장 진출을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주앙 칸디도’호를 진수하고 약 22개월 후인 2012년 3월 삼성중공업은 EAS의 지분 매각과 함께 협력관계를 정리했으며 첫 번째 진수 선박인 ‘주앙 칸디도’호는 이때까지도 건조가 마무리되지 않았습니다.

무궁무진한 해양자원이 발견된 이후 브라질 정부는 해양자원 개발에 적극 나서면서 이에 필요한 선박 및 설비를 자국 조선소에서 건조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합니다. 유조선은 물론 시추설비인 드릴십(Drill Ship), FPSO(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까지도 한국 조선업계의 기술지원을 받아 브라질 조선소가 건조한다는 것이 브라질 정부의 계획이었습니다.

삼성중공업과 비슷한 시기에 현대중공업은 브라질 석유회사 OGX의 자회사인 OSX조선소 지분 10%를 인수했으며 대우조선해양도 오데브레트(Odebrecht)와의 협력을 통해 브라질 시장 진출을 추진했습니다.

STX 역시 브라질 현지 조선전문 투자사인 PJMR과 공동으로 1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해양특수선 건조를 위한 조선소 건설 의향서(LOI)를 체결했으나 실질적인 진행상황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원유운반선 건조마저도 쉽지 않은 브라질 조선업계의 현실은 자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앞에서도 초라하기만 했으며 삼성중공업의 뒤를 이어 EAS 기술자문에 나선 일본 IHI마린(IHI Marine) 역시 최근 손실을 이유로 EAS 지분 정리를 선언했습니다. 이에 앞서 브라질 현지 언론은 EAS가 800명의 근로자를 해고했으며 추가적인 인원감축에 나선다는 사실을 비중 있게 보도했습니다.

글로벌 ‘조선빅3’가 브라질 시장에 관심을 둔 이유는 브라질 국영에너지기업인 페트로브라스(Petrobras)가 최대 30척이 넘는 드릴십을 비롯해 대규모의 해양플랜트 및 선박 발주를 추진한데 따른 것입니다.

이들 선박은 브라질 조선소가 건조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으나 기술지원을 통해 브라질에서의 사업영역을 늘려간다면 상선시장 침체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한국 조선업계에 탈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업계 전문가들이 현지에서 가르친다 하더라도 선박을 건조해 본 경험이 없는 근로자들을 이끌어간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입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유조선 진수를 마치고 한국의 설계인력들은 철수했는데 이후 선박 여기저기서 문제점들이 불거져나오기 시작했다”며 “결국 선박 갑판을 뜯어내고 각 부분별로 고치거나 새로 만드는 작업이 이어지면서 만 2년 만에 선박 인도가 겨우 이뤄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1980년대까지만 해도 브라질 조선업계는 기술력을 인정받았으나 이후 조선업이 급격히 쇠퇴한데다 소형선 건조경험만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기술자가 현지에 아무도 없었다”며 “자국 산업 부흥이 브라질 정권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다는 것은 이해하나 조선업이 그렇게 ‘수업료’와 경험 없이 금방 성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한국을 방문해 한국과 인도의 경제협력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짧은 일정에도 불구하고 30분이나마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를 방문해 둘러봤다는 점에서 조선업계에서도 인도 시장 진출이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국 조선산업 부흥을 꿈꾸고 있다는 점에서 브라질 정부와 인도 정부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 조선업계 역시 현대중공업이 인도 L&T(Larsen & Toubro)와, 삼성중공업이 코친조선소(Cochin Shipyard)와 기술협약을 논의하고 있으며 대우조선 및 STX조선해양도 여기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인도 국영가스기업인 가일(Gail)이 미국의 셰일가스 수입을 위해 9척에 달하는 LNG선 발주를 추진함에 따른 것이며 가일은 글로벌 선사들을 대상으로 장기용선계약 체결을 위한 입찰을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3개 선사를 선정해 각 3척씩 용선계약을 체결하겠다는 가일이 3척 중 한 척은 인도 조선소에서 건조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놓으면서 입찰은 유찰이 반복되는 상황입니다.

선사들 입장에서는 인도 조선업계가 2017년이라는 납기를 지킬 수 없을 뿐 아니라 통상 2억 달러 수준인 선박건조비용의 두 배 이상을 들이더라도 선박 품질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위험부담을 떠안으면서까지 입찰에 나설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 조선업계가 인도 시장 진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현지 조선사들과 협력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가일이 자국건조 방침을 철회하지 않는 이상 실질적인 선박 발주는 요원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한 벌크선을 거쳐 유조선, 컨테이너선에 대한 건조경험을 쌓은 이후 석유제품선, LPG선 등 기술력을 요구하는 선종에 대한 도전을 거쳐 LNG선, 시추선, FPSO 등 해양플랜트 시장으로 차근차근 발걸음을 옮겼던 한국 조선업계에 비해 당장 LNG선 건조에 도전하겠다는 인도 정부의 정책은 조선산업의 현실을 간과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

인도의 대표적인 산업이라고 한다면 저는 우선 ‘발리우드’를 떠올리게 됩니다. 미국 헐리우드 영화를 그대로 베껴서 인도 영화업계가 제작한 영화를 뜻하는데 표절임에도 불구하고 ‘발리우드’는 자국 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종종 화제가 되곤 합니다.

그러나 선박, 특히 LNG선은 ‘발리우드’처럼 열심히 베낀다고 해서 짧은 시간에 이뤄질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조선산업이 인력집약적이고 연관산업이 많다는 점과 모디 총리의 자국 산업 부흥에 대한 열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급한 LNG선 건조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한국 조선업계에 맡기고 벌크선부터 차근차근 20년을 내다보며 인도 조선산업 육성을 추진하는 것은 어떨까라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