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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조선산업 저가수주를 논하기 전에…

신주식 기자 (winean@ebn.co.kr)

등록 : 2015-12-10 15:17

▲ ⓒEBN
“금융권에서 저가수주만 얘기하는데 선주들이 선박을 발주하는 데는 용선료와 금리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선박 가격이 100만 달러 낮으면 뭐합니까? 한국 금융권의 선박금융 이자가 일본에 비해서도 3배 이상 차이가 나는데…”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선주들이 일본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하더라도 선박금융 금리를 생각하면 한국 조선소에 발주하는 것보다 비용이 적게 들어간다며 이와 같이 말했다.

선주들은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대출받아 선박을 발주하고 향후 용선료나 운임수익을 통해 장기간에 걸쳐 대출받은 선박 건조자금을 상환하게 된다.

중국 정부는 자국 조선산업의 성장을 위해 선주들에게 선박 건조비용의 70~80%까지 최저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으며 이는 중국 조선소들이 선박 수주에 적극 나설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일본 금융업계 또한 중국과 금리로 경쟁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선주들이 자국 조선업계에 선박을 발주하는 것은 기본이고 외국 선주들이 선박을 발주하고자 하면 일본 금융권은 1%도 안되는 낮은 금리를 제시하며 자국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한국 조선업계가 중국과 일본을 부러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본 조선소의 선가가 한국보다 여전히 높음에도 글로벌 선주들이 일본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은 금융비용까지 포함하면 일본에서 선박을 건조하는 게 한국보다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선박금융으로 5000만 달러를 대출받아 10년간 상환한다고 할 경우 일본 금융권의 경우 총 이자비용이 500만 달러가 채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3~4%의 금리를 적용하는 한국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는다면 같은 기간 최소 1500만 달러에서 많게는 2000만 달러 이상의 이자비용을 부담해야만 한다.

한국 조선업계가 일본보다 선박 가격을 200만~300만 달러 낮춘다고 해도 금리에서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이렇게 차이가 벌어지면 선주들에게 선박 가격은 의미가 없게 된다.

다른 경쟁국보다 더 우수한 품질의 선박을 더 낮은 가격에 건조하기 위해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연구개발에 매진해온 한국 조선업계의 불만이 쌓이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다.

여기에 수주계약을 체결하려 할 때마다 채권단이 저가수주가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RG(Refund Guarantee, 선수금환급보증)를 손에 쥔 채 시간만 지연시킴으로써 이를 기다리다 못한 일부 선주들은 한국을 떠나기도 했다.

경쟁력 없는 금리로 인해 국내 해운사들까지 중국이나 일본 조선소로 발길을 돌리는 상황에서도 한국 금융권들은 여전히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때 ‘전차군단’으로 불리는 전자와 자동차를 제치고 수출 1위에 오르며 한국의 외화벌이에 앞장섰던 조선업계가 올해는 해양플랜트에서 비롯된 대형 조선소들의 적자전환과 채권단의 자금지원 여부에 목매고 있는 중소조선소들로 인해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의 경우 중국의 거센 추격에 시장점유율이 점차 떨어지고 있으며 강력한 글로벌 브랜드들이 즐비한 자동차의 경우 한국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전차군단’의 위기는 점차 부각되고 있으나 조선업계의 경우 글로벌 경기침체 이외에 한국 조선업계의 위기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은 크지 않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중국의 급성장을 경계하고 있긴 하나 한국 조선업계의 올해 수주금액은 지난해 대비 20% 감소한 반면 중국은 반토막으로 줄었으며 일본 조선업계 또한 약 30% 감소했다.

정부의 지원도, 금융권의 금리혜택도 없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수주가 지난해보다 줄었다고는 해도 한국 조선업계의 노력은 충분히 박수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올해 조선업계는 여론 측면에서 혈세를 낭비하는 좀비기업으로, 채권단 측면에서는 더 이상의 자금지원에 나서지 않고 빨리 매각해버리고 싶은 골칫덩이로 부각되며 마음속으로 깊은 상처를 안게 됐다.

“혈세 들어갔고요, 같은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우리 회사가 경영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이런 신세를 지게 된 점에 대해서는 그냥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하지만 언론에 발표된 금액은 최대 지원규모이고 이걸 한 번에 다 받아서 우리 맘대로 쓰겠다는 것도 아니에요. 앞으로 더욱 열심히 일해서 이자까지 차곡차곡 갚아나갈 것이고 지분을 갖고 있는 채권단에게는 당연히 배당금도 돌아갈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그러니 세계 1위 기술력을 자부하는 대한민국 조선업계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수출 1위에 오르는 효자산업이 될 수 있도록 격려해주시고 지켜봐주세요.”

최근 기자와 만난 한 업계 관계자는 다시 또 어떤 내용의 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와 조선소 직원들의 가슴을 후벼 파게 될지 걱정스러웠는지 이렇게 간곡한 부탁을 말을 전했다.

하지만 한 때 ‘수출 1위’에 오르자 효자산업이라며 치켜세웠던 정부와 ‘키코(KIKO) 꺾기’로 중소조선소들에 치명타를 날리며 주저앉혔던 금융권은 한국 조선산업의 재도약을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한국에서 조선산업은 더 이상 희망이 없어요. 우리나라도 이제 개발도상국 시절의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아니라 금융이나 서비스 같은 다른 산업으로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 금융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