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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그때 수주 못한 것이 다행이죠”

신주식 기자 (winean@ebn.co.kr)

등록 : 2016-03-07 08:34

▲ ⓒEBN
“우리의 수주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 프로젝트를 경쟁사에 뺏겼으니 당시 실무담당자들은 문책을 면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우리가 그 프로젝트를 수주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현대중공업이 수주해 고생 끝에 지난해 인도한 ‘골리앗 FPSO’에 대해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이렇게 회상했다.

애초 이 프로젝트에 대한 협상은 대우조선이 먼저 나섰다. 노르웨이 엔지니어링 기업에서 제안이 들어와 실무담당자들이 현지로 날아갔는데 이 노르웨이 기업이 위치한 지역은 변변한 숙소도 없는 외지였다.

노르웨이 기업 대표가 자신의 집을 숙소로 제공하면서 대우조선 실무자들은 그곳에서 기술적인 부문에 대한 협상을 이어갔고 그렇게 세계 최대 규모의 원통형 FPSO(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는 대우조선이 수주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됐다.

하지만 계약 시점에서 ‘다된 밥’으로 생각했던 이 프로젝트의 최종계약자는 현대중공업으로 결정됐다.

대우조선 실무자들은 뒤늦게 수주경쟁에 나선 현대중공업이 발주사 측에 낮은 가격을 제시하며 눈앞의 프로젝트를 가로채갔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10억 달러에 ‘골리앗 FPSO’를 수주한 현대중공업은 이후 이 설비의 건조작업에 들어가면서 상당한 고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설계부서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음에 따라 4만2000m에 달하는 케이블을 설치했다가 이를 전부 철거하고 재설치해야 했으며 건조 과정에서 협력업체 직원 2명이 유명을 달리함에 따라 안전에 특히 민감한 노르웨이 언론에서는 상당한 우려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워낙 낮은 가격에 프로젝트를 수주하다보니 체인지오더(Change Order)를 통한 추가정산은 일상적인 업무가 됐다.

그럼에도 발주사 측에 다양한 추가정산 요구가 무난히 받아들여짐에 따라 현대중공업이 이 설비를 인도하는 시점에서 최종 계약금액은 26억 달러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북위 70˚ 이상의 혹한지역에 투입되는 해양플랜트는 ‘골리앗 FPSO’가 처음이다보니 발주사 측에서도 이 프로젝트에 대한 걱정과 근심이 많았다”며 “하지만 이 프로젝트를 성공할 경우 풍부한 자원이 매장된 북극해 지역 진출폭을 넓힐 수 있어 발주사 입장에서는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눈앞에 놓여있던 ‘다된 밥’을 놓친 기억이 있는 것은 현대중공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은 그 ‘다된 밥’을 가로채간 삼성중공업에 고마워하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2013년 6월 30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FPSO를 수주했다고 발표했다.

길이 330m, 폭 61m, 높이 34m 규모로 저장용량 230만 배럴에 상부구조(Topside) 중량만 3만6천t에 달하는 이 설비는 ‘에지나 FPSO’로 명명됐으며 지난 2009년 사전 자격심사를 시작으로 입찰기간만 5년이 걸리며 치열한 수주전이 펼쳐졌다.

애초 이 설비는 현대중공업이 발주사인 프랑스 토탈(Total)과 건조에 사실상 합의함으로써 현대중공업이 수주하는 것으로 비춰졌다.

하지만 나이지리아 정부가 이를 뒤엎고 현지생산(Local Contents) 비중을 현대중공업보다 높여 제안한 삼성중공업에 설비를 발주키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이 수주한 것과 다름없는 설비를 삼성중공업이 가로채갔다는 비판이 제기됐으며 현대중공업은 이 계약이 부당하다는 탄원서를 나이지리아 현지 언론에 4차례나 게재하는 등 적극적인 이의제기에 나서기도 했다.

나이지리아 정부가 요구하는 상부구조 현지생산 비중을 맞추기 위해서는 관련 인프라가 거의 전무한 현지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야 하는데 이 때문에 삼성중공업이 ‘에지나 FPSO’ 수주로 상당한 손실을 입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중공업이 ‘에지나 FPSO’ 건조로 기록하게 되는 손실이 조 단위에 달할 것이라는 소문이 기정사실처럼 인정되고 있다”며 “체인지오더, 미청구공사 등을 통해 실적에 반영되는 손실폭을 최대한 줄인다 해도 앞으로 추가발생되는 손실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우조선 역시 무리한 수주에 나서면서 적잖은 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지난 2010년 6월 대우조선은 네덜란드 올씨(Allseas Group SA)로부터 초대형 해양플랜트 설치선(Platform Installation/Removal & Pipe-lay Vessel)을 6억 달러에 수주했다.

이 설비의 수주는 당시 대우조선을 이끌던 남상태 전 사장이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문제는 같이 수주경쟁에 나섰던 경쟁사가 STX조선해양이었다는 점이다.

자금유동성 문제를 겪고 있던 STX조선은 해양 및 상선시장에서 자금운용을 위해 무리한 저가수주에 나섰는데 남 전 사장이 가격으로 STX조선을 제친 것이다.

길이 382m, 폭 124m에 달하는 거대한 설비를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는 길이 530m, 폭 131m의 제1도크를 보유하고 있는 대우조선 뿐이었다는 점에서 대우조선 노조는 남 전 사장의 무리한 수주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대우조선에 수천억원의 적자를 안겨준 이 설비는 올씨 창업주인 히레마(Pieter S Heerema)의 이름을 따서 ‘피터 쉘테(Pieter Schelte)’로 명명됐다.

하지만 인도 이후 올씨 창업주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 전범에 협력했었던 과거가 뒤늦게 밝혀지며 이름을 ‘파이오니어링 스피릿(Pioneering Spirit)’으로 바꾸는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이처럼 과도한 경쟁으로 서로 뺏고 빼앗기는 수주전이 이어지며 ‘조선빅3’는 지난해 모두 대규모 손실이라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향후 글로벌 오일메이저들이 다시 해양 프로젝트에 나서기 위해서는 ‘조선빅3’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점에서 ‘조선빅3’의 수주방식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다른 경쟁사들이 대규모 해양플랜트 수주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수주영업에 나서는 실무자들은 마음이 조급해질 수밖에 없어요. 지금까지는 실무책임자가 수주를 못해서 문책을 당하거나 아니면 회사에 큰 손실을 끼친 수주건을 성사시킨 장본인으로 문책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이제는 이전과 같은 수주경쟁도 좀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