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시간 : 2017년 11월 23일 02:35
EBN
EBN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뉴스스탠드
실시간 News

[기업 구조조정] 잿밥 눈 먼 정치권, ‘해운업계 구하기’ 정말 관심 있나?

정부 “안 되면 법정관리”… 현대상선 퇴로마저 사전차단 진짜 이유는
여야정 합의체 “현실적 대안 없는 정치적 모임”… 산업계만 혼란 예고

안광석 기자 (novushomo@ebn.co.kr)

등록 : 2016-04-22 15:27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해운업계 대상 구조조정 압박 발언 수위를 높이면서 대량해고사태 우려 등 극도의 긴장감이 국내 산업계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20대 국회의원 선거 직후인 데다, 오는 2017년 19대 대통령 선거도 앞둔 시기인 만큼 정치권이 구조조정 어젠다를 선점하기 위해 큰 틀에서 ‘기업 목 조르기’에 나서는 것은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야 3당이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여야정 협의체’ 구성에 합의하면서 기업들의 불안감은 현실이 되고 있다. 이에 힘입어 유 부총리도 공공연하게 구조조정 1순위로 현대상선 등 해운사들을 지목했다.

문제는 그러면서도 구조조정 이후 구체적 개편 계획 및 신성장동력, 실직자 대책 등의 대안은 빠져 있다. 당사자인 해운사들은 물론이고 이를 지켜보는 기업들이 공포에 질려 있는 진짜 이유다.

◆정부, 퇴로마저 끊어

박근혜 정부가 출범 때부터 강조해 온 부실기업 구조조정 정책의 본보기이자 ‘1번 타자’는 현대상선이다.

여야 협의체 구성 합의로 탄력을 받은 유 부총리는 21일 “용선료 협상을 질질 끌었다고 하면 정부가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용선료 협상이 제대로 안 된다면 정부는 추가 지원을 할 수 없고, 법정관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못 박았다.

“구조조정을 더 이상 미루지 못한다. 가장 걱정되는 곳이 현대상선”이라는 발언을 했다가 확대해석 자제를 촉구한 지 불과 일주일도 안 돼 더욱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본인도 22일 “수술이 무섭다고 안 하고 있다가는 죽음에 이를 수도 있으므로 구조조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유 부총리 발언대로 용선료 협상 진척이 없어 현대상선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된다면 대규모 해고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시황상 재무구조 개선이 어려울 뿐 아니라 매각을 타진한다 해도 현재 시황상 인수자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이 무너지게 되면 다음 타겟은 한진해운이다. 현대상선 만큼은 아니지만 채권단 관리 하에 유동성 확보 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용선료를 낮추기 위한 협상도 병행 중이다. 이 상황에 유 부총리도 “해운사가 꼭 2곳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현재는 금융지원을 전제로 한 채권단 자율협약을 위한 마지막 퍼즐조각인 용선료 인하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정부 측의 이러한 입장은 현대상선 등의 마지막 남은 퇴로조차 끊어버리겠다는 의미다.

◆‘등 떠밀기식’ 구조조정, 진정한 의미는

그렇다면 정부와 정치권이 수년 전부터 지속된 해운 불황에는 손 놓고 있다 이제 와서 밥상을 뒤엎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해운업계 현장에서는 이를 두 가지로 나눠 해석하고 있다. 그 첫 번째가 정부의 ‘으름장’은 용선료 인하 협상 대상인 해외선주들의 위기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점이다.

용선료 인하 협상이 진척되지 않아 현대상선이 부도라도 날 경우 선주들 입장에서도 주요고객을 잃어버리는 결과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선주들은 불황이라고 하지만 무수히 많은 고객 중 한 곳이 없어지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체감도가 그리 높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용선료 인하 자체가 계약 변경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적 분쟁이 발생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 대외 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도 있다.

실제로 해외선주들은 현대상선 및 한진해운과의 협상을 그리 서두르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정부가 공공연히 용선료 인하를 독촉하는 것은 해운사들 보다는 해외선주들에 어필하기 위한 퍼포먼스라는 해석이다.

둘째로 정부의 해운사 ‘등 떠밀기’는 어차피 용선료 인하는 물 건너갔다는 점을 전제로 한 채 내년 대선 전에는 어떻게든 현정부 정책을 완료하겠다는 의지라는 해석이다. 과거 새누리당 친박근혜계 핵심이었던 유 부총리의 공격성 발언은 오로지 정치논리에 의거한 행동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현대상선이 용선료 인하 협상을 타결해야 할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앞서 열거한 이유로 해외선주 한 곳도 설득하기 힘든 마당에 자율협약을 위한 사채권자집회가 열리는 6월 초까지 모든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현재 해운업계에서는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 가능성에 무게를 더 두고 있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는 물론 여야 모두 구조조정에 따른 대안 제시와 이후 업계 재편에 대한 상세한 로드맵 하나 없이 총선이 끝나자마자 구조조정에 합의한 사실 자체가 처음부터 해운사 살리기에는 관심이 없고 내년 대선 판도에만 신경 쓴다는 증거”라고 토로했다.

◆“정치권 개입, 불필요한 혼란만 초래”

물론 현장에서는 정부의 구조조정 독촉을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다. 오히려 정치적 의미로 내년까지 해운업계를 포함한 모든 산업계에 혼란만 초래하지 않을지 우려하는 모양새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과 자구책 마련의 필요성 등은 큰 틀에서 동의는 한다”면서도 “다만 구조조정이 지연됐기 때문에 나선다는 입장은 오해의 소지가 크고 의도를 의심케 한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운임료 하락 등 해운업의 불황 조짐은 2009년부터 본격화 됐지만 당시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정부의 눈에 띄는 움직임은 없었고 오히려 현장에 대한 불충분한 이해로 위기를 더욱 심화시켰다는 게 관련업계의 주장이다.

현재의 해운 분야 불황은 비단 국내 해운사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다. 세계 1위 해운사 머스크(덴마크)를 비롯해 프랑스와 독일, 일본의 글로벌 해운사들도 불황으로 휘청거려왔고 현재도 재무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들 해외 해운사들은 자국 정부의 강력한 자금지원과 중재 아래 대형선박들을 확보, 조선사들에 대한 발주 뿐 아니라 채무재조정도 비교적 원활히 진행되면서 재무부담을 어느 정도 던 상태다.

즉 해외정부들의 경우 현재 현대상선처럼 용선료 인하 협상이나 사채권자 채무조정이 금융지원 등의 조건으로 걸린 게 아니다. 처음부터 정부 주도로 해운사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의 구조조정이 실시됐다는 의미다.

반면 국내 정부의 경우 그동안 보유자산을 매각해 빚을 줄이는 단기적 처방에만 급급해 왔으며, 결과적으로 팬오션과 대한해운 등의 해운사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현대상선도 채권단과 협의해 2013년부터 보유자산 매각을 충실히 이행해 왔지만 결국 위기는 가시지 않았고 오히려 정부의 압박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복수의 해운업계 관계자는 “현재 현대상선이나 한진해운이 휘청이고 있는 것도 경영상 문제보다는 시황문제에 따른 것”이라며 “해운사들이야 정부나 채권단이 하라는 대로 자산 매각한 죄 밖에 더 있느냐”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결국 구조조정 방법론이 문제인데 현재의 정부 늬앙스는 그동안 해운지원 정책 실수 내지 미비점을 인정하지 않고 재무부실 책임을 해운사 측에 떠넘기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정부의 어설픈 개입으로 불안한 것은 해운뿐만이 아니다.

재계 한 관계자는 “2차 부실기업 지정이나 기업활력제고법(일명 원샷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하반기 이후에는 조선 및 철강 등 소위 5대 취약업종 전방위로의 압박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치권이 구조조정 큰 틀에서는 합의하고 있지만 해운업과 마찬가지로 대안이 나온 것은 없다”며 “여소야대 정국인 데다, 구조조정에 대한 각 당의 정치적 입장도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실제 재무구조 개선으로 이어지는 게 아닌 혼란만 초래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