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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정부, 눈 뜨면 조선·해운 구조조정… “모르면 그냥 가만있자”

고뇌도 대안도 없이 ‘설’만 무성한 정부 주도 구조조정
가만 있다 이제 방안 논의… 속 보이는 ‘정치적 의도’

안광석 기자 (novushomo@ebn.co.kr)

등록 : 2016-04-25 13:34

“벼락치기 시험공부가 통하는 학생이 있듯 높으신 분들 머리 맞대보면 당장 뭔가 나오지 않겠어요? 확실한 것은 3년여 전부터 비슷한 논의는 많았는데 대책이라고 나온 건 없어요.”

기업 관계자들과 대화하다 보면 어느 순간 흐름이 끊어질 때가 있다. 사내 인사와 정부 정책이 화제로 떠오를 때다. 하지만 최근 대화를 나눴던 조선업계 고위관계자의 입은 현재 정부가 주도 중인 조선·해운 구조조정 정책에 대한 ‘필터링’이 전혀 없었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도 “(정부가)어떻게 해도 이제는 신경 안 쓰지만 적어도 업계 자체를 축소시키려는지 살리려는지 의도 정도는 알게 해 달라”라고 토로한다.

나름 표현에 있어 자제하려는 노력들은 가상했지만 정치권을 향한 워낙 뿌리 깊은 불신과 냉소는 도통 감출 길이 없어 보인다.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선 조선 및 해운업계 불황은 한두 해 전 시작된 일이 아니다. 그들 말마따나 수년 전 양 업계의 침체의 기운이 감지됐을 때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겠거니와, 가만히 있다가 20대 총선이 끝나자마자 이슈화를 시키는 의도 자체에도 의구심을 갖게 한다.

세월호 침몰 2주기인 데다, 관련법이 아직 계류돼 있고 오는 2017년 대선도 앞둔 민감한 시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 아마 지나친 생각이라고 역공을 받을지 모르겠다.

이를 제쳐두고서라도 ‘누가, 무슨 목적으로, 어떻게 구조조정을 할 것인가’라는 기본적인 물음에도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은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자신한다.

조선 분야를 예로 들어보자.

박근혜 정부는 2012년 대선 공약으로 부산 선박금융공사 설립을 내걸었고 이후 정치권에서도 선박금융공사법 및 해양금융공사법 등의 관련법안을 쏟아냈었다. 조선업계 부실을 확대하는 근원적 문제인 선박금융의 지원 대상과 적용범위를 확대하자는 차원에서다.

하지만 해당법안들은 휴지조각이 된지 오래다. 그사이 조선업은 선가 하락 및 해양플랜트 부실 등이 누적되면서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오히려 정부는 이제 와서 “방만경영으로 잘 하지도 못하는 해양플랜트 부실을 키웠다”며 뒤통수를 쳤다. 한국 조선업이 세계 1위이자 국내 산업의 효자라고 칭찬과 격려의 악수를 아끼지 않던 입과 손으로 말이다.

한 술 더 떠 정부는 지난 2015년 조선 빅3(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가 조단위 부실을 내자 좀비기업 퇴출이라는 명분 아래 금융지원 등에 더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정부 주도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소문도 파다해졌다.

현재도 채권단과 언론들이 기정사실인 마냥 떠들고 있는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간 합병설 내지 도크별 분리 매각, 방산 부문 매각이라는 현실성이 결여된 괴소문이 나온 것도 당시부터다.

정부나 일부 채권단 및 언론들의 소원(?)대로 조선 빅3는 물론 현대상선-한진해운간 합병이 기정사실화 됐다고 가정해보자.

조선 빅3와 양대 해운사는 각 분야별로 사업 포트폴리오가 거의 비슷하거나 완전히 겹친다. 즉 설계에서 생산에 이르는 중복 인원을 대부분 정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더욱이 조선 빅3의 경우 수천개에 이르는 하청업체를 두고 있다.

조선 빅3가 지난해 1만5000명을 감축했고 6000여명을 더 감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정년퇴직 등을 포함한 자연감축을 의미한 것이다. 정부가 미는 대로 인위적 감축을 추진한다면 더 이상 6000여명 뿐만의 문제가 아닌 울산이나 거제 등 관련지역 존폐문제로 직결된다.

핵심은 구조조정 후 이들 지역이 대신 먹고 살기 위한 신성장동력 대안이나 수만명의 실업자 대책 문제, 도시 공동화 현상 등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여부라는 얘기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부터 이에 대한 대안을 전혀 내놓지 못하고 불리할 때마다 “구조조정은 원칙상 자체적으로 실시되는 것”이라며 자세한 설명을 피해왔다. 이조차 해당지역 표심(票心)을 의식한 행동으로 보여져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정부 일각에서 제기되는 조선소별 드릴십 등 전문 부문 양성화나 방산 부문 매각, 연구·개발(R&D)등 당장 급하지 않는 자산 매각설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해양설비처럼 블루오션은 아니더라도 평소 일반상선이나 방산 등을 영위하지 않고 있다면 인력도 다 감축한 상황에 시황이 좋아지면 쏟아지는 일감을 어떻게 감당할까? 저성장 시대에 접어드는 사업 특성상 선주들은 더욱 차별화된 고부가가치 기술을 원하려 들 텐데 R&D를 하지 않은 채 중국이 잠식해가는 일반상선 부문에서 계속 이윤을 남기겠다는 논리인가?

이러한 형태의 괴소문이 지난 1980년대 일본에서 현실화된 사례가 있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인원이 반 이상 줄어든 데다 포트폴리오를 버렸기 때문에 이후 다시 시황이 좋아졌어도 일본 조선소들은 손가락만 빨고 한국 조선소들이 대신 수주해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R&D 부문에 대한 매각도 이뤄졌기 때문에 고부가가치 기술을 원하는 선주들의 기호 추세 파악에 실패, 관련 시장을 재빨리 선점한 한국에 세계 조선 1위라는 타이틀도 넘겨줘야 했다.

물론 업체간 무분별한 합병으로 일어나는 인력문제는 해운업계도 조선업계와 다를 바 없다. 더군다나 해운업계의 경우 합병이 된다 해도 각자가 속해 있는 글로벌 해운동맹(얼라이언스) 영역이 높아지는 메리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

현대상선이 화주 5군데가 속해 있는 얼라이언스에 속해 있지만 한진해운과 합병이 된다고 한진해운이 속해 있는 얼라이언스 소속 화주의 고객이 될 수는 없다. 즉 해운사간 합병은 ‘1+1=2’가 아닌 ‘1+1=1’이나 그 이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럼에도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해운사간 합병의 당위성과 대안 등은 없는 상태다.

즉,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언급 내지 정치권에서 쏟아져 나오는 구조조정 관련 발언은 현장과 그 특징에 대한 고찰은 배체한 채 정치적 목적에 의한 공포분위기만 조성하는 꼴이다.

오는 26일 취약업종에 대한 구체적인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라지만 그 짧은 시간에 얼마나 좋은 대책을 준비했는지 일개 기자의 머리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정부는 지난해 말에도 조선 및 해운, 철강을 위시한 5대 취약업종을 설정하고 구조조정 방향을 제시했지만 결국 수박 겉 핥기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물론 큰 틀에서 부실한 기업은 근본적 재무구조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은 동의한다. 하지만 엉뚱한 논리에 의거해 성급히 접근하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다.

기업의 재무부실이 보이면 앞뒤 없이 보유자산 무조건 끌어내 팔게 하고, 그것조차 안 되면 정부 힘으로 합병 내지 공중분해 시키는 것은 군사정권 시절 악습이다. 관련산업에 대해 알지 못하고 알 생각도 없다면 구조조정 운운하지 말고 “시장경제에 맡기겠다”라고 하면 중간은 간다. 어차피 구조조정을 주도하는 것은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이다.

정말 한국경제와 산업이 걱정된다면 제발 좀 현장을 직접 가보고, 현장 관계자들의 얘기를 듣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신중하게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