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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중국 조선도 지고…새벽은 곧 온다

신주식 기자 (winean@ebn.co.kr)

등록 : 2016-05-12 19:36

▲ ⓒEBN
올해 들어 극심한 수주난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는 중국 조선업계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중국이 한국을 제치고 글로벌 조선강국으로서의 지위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실상을 살펴보면 중국 조선업계의 수주가뭄과 이를 견디다 못한 ‘적자수주’는 심각한 수준이다.

상해외고교조선을 비롯한 중국 조선업계는 자국 선사로부터 40만DWT급 VLOC 30척을 수주했다.

이를 제외한 중국의 올해 1~4월 수주량은 49만5827DWT(29척)로 척수는 많으나 DWT 기준으로는 한국(75만6800DWT)이나 일본(65만3600DWT)보다 적다.

중요한 것은 자국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1년 이상 수주에 나서지 못했던 중국 민영조선소들이 수주가뭄을 참지 못하고 선사에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을 제시하며 적자수주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진하이중공업은 최근 30만DWT급 VLCC(초대형원유운반선) 수주에 나서며 척당 선박가격으로 7800만 달러를 제시했다. 시장가격이 9100만 달러, 다른 중국 조선소들이 원가라고 주장하는 8800만 달러에 비해서도 1000만 달러가 낮은 것이다.

이번 수주건에는 진하이중공업 뿐 아니라 다른 중국 조선소들도 비슷한 수준의 가격을 제시하며 수주경쟁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중국 민영조선소들이 수주한 선박들의 대부분은 원가에 미치지 않는 조건으로 계약이 체결됐으며 선사들이 계약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 현지 업계의 지적이다.

반면 한국의 중소조선소들은 2010년대 들어 채권단 관리에 들어가며 수익성을 보장할 수 없는 수주건에 대해서는 계약을 체결하지 못하고 있다. 채권단은 회계법인의 감사를 통해 수익성이 있는 수주건에 대해서만 선수금환급보증(RG, Refund Guarantee) 발급을 허용하고 있다.

현재의 수주가뭄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다만 수년간 지속된 상선 분야의 수주가뭄을 해양플랜트가 숨겨줬을 뿐이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글로벌 ‘조선빅3’는 상선 시장의 침체로 부족한 일감을 채우기 위해 해양플랜트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했다. 상선이 확실한 이윤을 보장하는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이라면 프로젝트별로 많게는 30억 달러에 달하는 해양플랜트의 경우 장담할 수는 없으나 일단 소화시키는데 성공만 한다면 회사를 살찌고 기름지게 해 줄 ‘음식’인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조선빅3’ 모두 낯선 해양플랜트 시장에 도전하다 배탈이 나기 시작했으며 이 배탈이 감지되기 시작한 2012년부터 이를 만회하기 위한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결국 이미 발생한 배탈은 자체적으로 막기에는 너무 컸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수술이 시급한 상황에 처하게 됐다.

사람의 경우 수술을 비롯한 치료가 장기화되면 이를 받쳐줄 체력이 필요하며 충분한 음식을 섭취하는 것만이 체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다. 구조조정이라는 이름 아래 혹독한 수술과 치료를 강요받는 조선업계도 현재의 위기를 버티기 위해서는 앞으로의 체력을 보장해줄 수 있을 만큼의 수주가 이뤄져야만 한다.

하지만 정부와 채권단은 구조조정에 대한 목소리는 높이면서도 ‘최소한의 먹을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여기에 호황기 시절 넘쳐나는 음식을 소화하기 위해 늘렸던 ‘식기’들, 생산설비마저도 대폭 줄일 것을 강요하고 있다.

문제는 극심한 글로벌 경기침체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한국 조선업계가 현재의 위기만 무사히 넘긴다면 중국과 일본을 제치고 글로벌 조선강국으로서의 지위를 더욱 확고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자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일부 국영조선소를 제외한 중국 조선업계는 적자수주로 인한 자멸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 1980년대 생산규모를 크게 축소한 이후 연간 건조할 수 있는 선박이 그리 많지 못한 상황이다.

2000년대 중반의 글로벌 호황기가 다시 올 것으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호황기의 절반 수준까지라도 회복된다면 그 수혜는 한국 조선업계에 몰릴 수밖에 없다.

이를 대비하지 못하고 쇠락한 일본 조선업계와 마찬가지로 한국 정부와 채권단이 조선소의 규모 축소에만 매달린다면 당연히 한국을 찾게 될 글로벌 선사들이 발주할 곳을 못 찾아 중국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며 한번 돌린 발길을 되돌리기는 매우 힘든 것이 해운업계의 특성이다.

일본에만 20년간 선박을 발주했던 대만 에버그린(Evergreen) 지난 2010년 삼성중공업에 8000TEU급 컨테이너선 20척을 발주한 것은 일본 조선업계에 일대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선박가격보다 ‘관계’를 중시하는 글로벌 선사들이 거래처를 바꾸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며 그렇게 한번 바뀐 거래처를 되돌리는 것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의 수술을 하고 ‘저가수주’라는 의혹으로 인해 허기진 수주잔고를 채우지 못하더라도 한국 조선업계는 어떻게든 올해를, 현재의 위기를 극복해내야만 한다.

“글로벌 선사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대부분의 선사들이 2017년 납기보다 2018년 납기를 선호하고 있어요. 이는 2018년부터 해운시황이 본격적인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에 많은 선사들이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해 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 ‘해 뜨기 직전’이 짧으면 올해, 길어도 내년부터는 여명이 밝아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선박 수주에 대한 선사들의 문의는 거의 없으나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은 놓지 않고 있다는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이와 같은 선사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살아남는 자가 강자라고 했어요”라는 말을 새삼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