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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조선 빅4’에서 법정관리까지…STX조선 '영욕'의 역사

호황기 조선·해운 주력으로 급성장…무리한 확장으로 급격히 몰락
자금유동성 위기 극복 위해 ‘시장교란자’ 비난에도 적자수주 지속

신주식 기자 (winean@ebn.co.kr)

등록 : 2016-05-25 17:01

▲ 중국 다롄에 위치한 STX다롄 조선소 전경. STX다롄은 협소한 STX조선해양 진해조선소의 한계를 넘어 글로벌 조선네트워크를 구축하고자 한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의 야심작이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무리한 확장 및 투자는 그룹의 몰락 뿐 아니라 STX조선의 쇠락으로 이어지게 됐다.ⓒSTX조선해양

자금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장교란자’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적자수주를 지속해온 STX조선해양이 끝내 법정관리로 내몰리게 됐다.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25일 회의를 열고 이달 말까지 STX조선해양에 대한 법정관리 신청 여부를 확정키로 했다.

이 조선소는 3년 전인 2013년 5월까지만 하더라도 수주잔량 기준 글로벌 4위 자리를 지키며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과 함께 한국 조선업계의 성장세를 이끌어왔다.

STX조선 진해조선소는 지난달 말 기준 글로벌 수주잔량 순위에서 23위, 고성조선소 등을 포함한 조선그룹 순위에서는 11위를 기록하고 있다.

조선산업은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의 꿈이었다. STX조선 전신인 대동조선의 경영권 인수에 나섰던 2001년 이전부터 강 전 회장은 시간이 날 때마다 조선소 맞은편 산에 올라 꿈을 키워갔다.

STX조선 관계자는 “강 전 회장은 산 중턱에서 조선소를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이 조선소를 반드시 인수하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팬오션과 함께 STX조선이 그룹의 주력사업이었으며, 강 전 회장은 조선업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STX그룹은 2004년 범양상선을 인수해 STX팬오션으로 사명을 변경하면서 조선과 해운 사업분야를 모두 가진 그룹으로 변모했다. 강 전 회장의 이와 같은 선택은 이후 시작된 조선 및 해운의 황금기와 맞물려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재계 순위도 수직상승했다.

당시 취업을 앞둔 대학생들에게 STX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유수 대학 예비졸업생들은 삼성, 현대보다 젊고 에너지가 넘치는 STX 입사를 희망했으며 이에 따라 우수 인재들이 속속 STX그룹의 일원으로 들어왔다.

업계 관계자는 “권위적이고 딱딱하게 굳은 이미지가 강한 기존 대기업들보다 자유롭게 본인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업으로 STX를 꼽는 친구들이 많았다”며 “삼성과 STX 둘 다 합격했는데 STX를 선택한 대학 동기도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BDI(벌크선 운임지수)가 600포인트대에 있으나 2000년대 중반 황금기 시절에는 1만포인트를 넘어섰다.

선박 가격도 케이프사이즈 벌크선의 현재 시장가격은 4450만 달러에 불과하나 2008년에는 현재가격의 두배가 넘는 1억달러를 호가했다. 화물을 운송하면 운송하는 대로, 선박을 수주하면 수주하는 대로 그룹에 엄청난 수익을 안겨줬다.

하지만 강 전 회장은 진해에 위치한 STX조선의 협소한 부지가 항상 불만이었다. 기존 4000~5000TEU급이 주류였던 컨테이너선 시장은 1만TEU급 이상 선박 발주가 늘어났으며 급증하는 일감을 감당하기에는 100만㎡(약 30만평) 부지의 진해 조선소가 턱없이 작았다.

▲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STX조선해양

노르웨이 아커야즈(Aker Yards)를 인수한 STX유럽, 이에 더해 중국 다롄에 직접 건설한 STX다롄은 진해 조선소의 한계를 넘어서고 싶었던 강 회장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만 같았던 조선·해운 시장의 황금기는 2008년 9월 미국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급격히 위축됐다. 이미 STX다롄 건설에만 2조원 이상의 자금을 쏟아 부은 STX그룹은 급격한 자금난에 봉착하게 됐으며 강 전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당장 급한 유동성 문제를 풀기 위해 적극적인 영업에 나서기 시작했다.

‘시장교란자’라는 비난을 받기 시작한 시기도 이 즈음이다.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한국 조선업계는 STX조선이 중국보다도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수준을 넘어 원가 이하의 적자수주에 매달리면서 선수금 확보를 통한 자금문제 해결에만 주력하고 있다는 비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글로벌 선사들 입장에서는 기술력이나 선박 품질 면에서 한국에 뒤처지는 중국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하는 것보다 같은 한국 조선소인 STX조선이, 그것도 중국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하며 선박을 건조하겠다는 제의가 반가울 수 밖에 없었다. 동시에 STX조선으로 인해 선박의 시장가격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2013년 STX조선이 자율협약을 체결한 이후 수주활동에 채권단의 제재를 받으면서 글로벌 선박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며 “2012년 대비 선박 발주가 늘어난 이유도 있지만 업계에서는 STX조선이 적자수주에 나서지 못하게 되니 이제 선박가격이 올라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많았다”고 말했다.

채권단 관리에 들어가긴 했으나 STX조선은 이미 어떻게 손을 쓸 방법이 없는 상태였다.

산업은행은 STX다롄 건설, STX유럽 인수 등에 3조5000억원이 투자됐으나 이들 자금의 대부분은 회수가 불가능하며 단기 유동성 해결을 위한 저가수주 및 건조역량 상 정상건조가 불가능한 선박의 수주 지속으로 대규모 손실이 초래됐다고 지적했다.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5월 말 도래하는 결제자금의 결제가 곤란해 부도 위기에 처한 만큼 STX조선의 법정관리 신청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법정관리에 돌입하게 되면 회생절차를 통한 과감한 인적·물적 구조조정과 함께 채무재조정, 해외 선주사들의 손해배상채권 등 우발채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현재의 자율협약에 비해 회생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대한조선이 지난 2014년 이와 같은 목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했으며 ‘패스트 트랙(Fast Track)’ 제도를 이용해 1년 3개월 만에 법정관리를 졸업하는데 성공했다.

STX조선도 채권단과의 협의를 통해 채무를 줄이고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거친다면 대한조선처럼 재도약을 위한 기반을 마련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지난해 말부터 추진 중인 1000명 규모의 인력감축 외에 더 많은 직원이 회사를 떠나가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으며 살아남기 위한 노력도 더욱 힘겨워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