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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선, 해답은 있다-2] 수주지원정책, 이대로는 안된다

글로벌 LNG선시장 진출 이끈 정부, 지금은 원가수준 발주만 고집
‘제값’ 지불하고 기자재·협력업체 동반성장 이끌 정책 마련해야

신주식 기자 (winean@ebn.co.kr)

등록 : 2016-06-02 16:53

한국 조선업계에 대한 구조조정 광풍이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글로벌 ‘조선빅3’까지 번졌다. 비용절감을 비롯한 구조조정도 시급한 상황이나 해운산업과 함께 전략산업이자 세계 1등을 자부하는 한국 조선업이 현재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글로벌 조선강국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도 필요한 시점이다. 여기서는 ‘조선빅3’를 중심으로 한국 조선업계의 위기와 글로벌 조선시장에 대해 돌아보고 앞으로 한국 조선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편집자 주]

▲ 한진중공업이 건조한 케이프사이즈 벌크선 전경.ⓒ한진중공업

한국 정부가 한국 조선업계에 발주하는 물량에 대해 지나치게 비용에만 집착하고 있어 일감확보를 통한 수익 창출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해 정부가 일감을 지원할 경우 수익보다 건조경험 및 기술력 축적에 의미를 둘 수 있으나 겨우 원가를 보전할 수 있는 수준의 계약만을 고집하는 것은 자국 산업 발전을 위해 지나치다는 비판이다.

1990년대 들어 한국 조선업계는 한국가스공사를 통한 LNG선 수주로 인해 글로벌 LNG선 시장 진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지난 1991년 현대중공업이 12만5000㎥급 모스형 선박인 ‘현대 유토피아’호를 수주한데 이어 이듬해에는 한진해운이 한국가스공사의 LNG 수입을 위해 13만㎥급 멤브레인형 ‘한진 평택’호를 발주했다.

‘한진 평택’호 건조에는 한진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공동으로 참여해 창사 이후 첫 LNG선 건조에 나섰으며 이보다 4년 후인 1996년에는 삼성중공업도 SK해운으로부터 13만8000㎥급 ‘SK 수프림’호를 수주하며 LNG선 시장에 뛰어들었다.

인화성이 높은 화물을 운송하는 LNG선의 경우 조선소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조해서 안정적으로 운항에 나서고 있는 선박이 있다는 것을 선사들에게 입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같은 건조실적이 없던 1990년대 초 정부는 가스공사를 통해 한국 조선소들이 LNG선 건조실적과 기술력을 쌓아갈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처럼 정부의 자국 발주 물량은 그동안 진출하지 못했던 고부가가치선 시장 진출에 힘을 실어주고 글로벌 경기침체로 수주가뭄에 시달릴 때 조선소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나 선사의 발주가 단순히 일감을 채울 수 있을 뿐 이를 통해 일정한 이익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조선소 뿐 아니라 협력업체들의 생존을 위해 고민해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값싼 중국이나 시장확대를 위해 전략적으로 낮은 가격에 접근하는 일본에 일감을 내주는 상황은 자국 산업을 저버리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 성동조선해양에서 건조 중인 선박들 모습. 성동조선은 지난해 채권단의 자금지원 문제와 삼성중공업의 경영협력 협약 체결이 진행되면서 정작 글로벌 선사들을 상대로 한 수주협상에는 나서지 못했다.ⓒ성동조선해양

한국전력공사 산하 발전5개사들은 2013년 유연탄 수입을 위해 필요한 유연탄운반선 9척을 한국 조선업계에 발주하며 부족한 일감 지원에 나선 바 있다. 당시 정부는 한국 해운업계가 운송하고 한국 조선소들이 선박을 건조하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상생의 모델이라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하지만 이에 대한 실상은 9척 중 2척을 수주했던 STX조선해양이 자율협약에 들어가며 뒤늦게 알려졌다.

STX조선 채권단은 자율협약과 함께 수익성이 없는 수주건에 대한 대대적인 계약취소를 단행했는데 이 계약취소 물량에는 유연탄운반선 2척도 포함됐다.

취소된 유연탄운반선 2척은 같은 해 11월 한진중공업으로 넘어갔는데 이미 동형선 4척을 수주한 한진중공업의 경우 같은 선박을 여러 척 건조하게 되면 전체적인 건조비용이 줄어드는 ‘시리즈선 효과’를 통해 손실은 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었다.

발전사들은 화력발전소 운영을 위해 필요한 유연탄운반선을 일본 조선소에 발주함으로써 업계의 지탄을 받아왔다.

업계 관계자는 “MOL을 비롯한 일본 선사들이 한국 유연탄 운송업 진출을 위해 낮은 비용을 제시하며 적극적으로 영업을 해왔던 것은 사실”이라며 “그렇다고 공기업이 국내 해운업계 및 조선업계를 외면하고 일본에 사업을 발주하는 것은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현대상선, 한진해운, 팬오션 등 국내 대형 선사들도 한국이 아닌 중국 조선업계에 벌크선을 발주한 사례가 있으며 조선업계는 국내 선사들이 중국으로 발길을 향할 때마다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국내 선사들이 중국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하는 것은 선박 가격이 한국보다 10~15% 낮은데다 한국 금융업계에 비해 상당히 낮은 1% 수준의 금리로 선박금융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발주물량에서 수익을 내기 힘든 것은 방산분야도 마찬가지다.

현대중공업을 비롯해 대우조선해양, 한진중공업, STX조선, 대선조선 등 국내 일부 조선소들은 잠수함을 비롯해 이지스함, 경비정까지 한국 해군 및 해경에서 필요로 하는 함정들을 수주해 건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함정의 수주는 부족한 일감을 다소 채워주는 것에 그칠 뿐 함정 건조를 통해 조선소가 이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가를 위한 사업인 만큼 우리나라 해양을 든든하게 지킬 수 있는 우수한 함정을 건조해 제 날짜에 인도하는 것이 중요할 뿐 기업으로서의 이익을 앞세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도 “한국 해군에 인도한 함정 건조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수출에 나설 경우 새로운 수익사업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는 속내를 밝혔다.

한국의 산업구조상 중국처럼 ‘발레막스’를 동원해 대규모 철광석을 수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일본처럼 대규모 셰일가스 수입을 위한 선박 발주에 나서는 선사가 나오긴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규모는 크지 않더라도 한국 정부나 선사의 필요에 의해 발주되는 선박들은 한국 조선소에서 건조돼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 국영기업 뿐 아니라 자국 선사에서 발주하는 선박들은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두 자국 조선소에서 건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며 “반면 한국 정부나 선사들은 비용절감이라는 이유로 한국 조선업계를 외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는 원가 수준의 계약을 강요하는데 이럴 경우 일은 하지만 돈은 벌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제대로 된 비용을 지불하고 그 이익이 기자재업체 및 협력업체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정책적인 대안을 마련한다면 조선업계의 위기 극복과 동반성장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