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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선, 해답은 있다-5] 빼앗긴 선사는 돌아오지 않는다

한국, 일본 생산량 감축으로 찾아온 ‘조선강국’ 기회 놓치지 않아
획일적 구조조정 강요는 중국에 공들여 쌓아온 시장 내주는 꼴

신주식 기자 (winean@ebn.co.kr)

등록 : 2016-06-11 03:18

한국 조선업계에 대한 구조조정 광풍이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글로벌 ‘조선빅3’까지 번졌다. 비용절감을 비롯한 구조조정도 시급한 상황이나 해운산업과 함께 전략산업이자 세계 1등을 자부하는 한국 조선업이 현재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글로벌 조선강국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도 필요한 시점이다. 여기서는 ‘조선빅3’를 중심으로 한국 조선업계의 위기와 글로벌 조선시장에 대해 돌아보고 앞으로 한국 조선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편집자 주]

▲ 한국 조선업계가 건조한 선박들 모습.ⓒ각사

글로벌 선사들은 전통적으로 지나치다 싶을 만큼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선박 발주를 위해 적게는 수백억원, 많게는 조 단위의 자금을 투자하기 때문에 경영전략 수립부터 선박 발주까지 선사들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신중한 결정을 내리기 마련이다.

이와 같은 성향은 선박을 건조하는 조선소 선정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이며 특정 조선소와 신뢰관계가 구축된 선사로부터 다른 조선소가 선박을 수주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한국이 글로벌 조선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로 1980년대부터 이뤄진 일본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이 꼽히고 있다. 당시 일본 정부 주도의 설비축소로 인해 일본 조선업계가 연간 건조 가능한 선박은 지속적으로 감소했으며 세계 최대 해운국가인 그리스를 비롯한 글로벌 선사들은 경기회복 이후 일본에 선박을 발주하고 싶어도 인도시기가 맞지 않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선소들이 모인 한국 조선업계가 1990년대 들어 연간 수주량에서 일본을 제칠 수 있었던 것은 기술력을 비롯한 경쟁력 향상과 함께 선사들이 원하는 시기에 선박을 인도할 수 있는 규모를 갖췄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는 연간 최대 1234만DWT의 선박 건조가 가능하며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는 972만DWT,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도 871만DWT의 선박을 건조할 수 있다.

반면 일본 조선업계의 경우 츠네이시조선의 누마쿠마조선소가 278만DWT로 가장 크며 이마바리조선의 사이조조선소가 251만DWT로 뒤를 잇고 있다.

지난해 인도량을 보면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가 521만DWT로 세계 최대를 기록한데 이어 대우조선(434만DWT), 현대삼호중공업(385만DWT), 삼성중공업(307만DWT)이 뒤를 이었다.

일본은 오시마조선이 237만DWT로 가장 많았으며 이마바리조선 사이조조선소가 158만DWT, JMU아리아케조선이 154만DWT를 인도했다.

구조조정 당시 설계인력에 대한 대대적인 감축을 단행한 일본은 표준사양을 확립해 모든 선사들에게 동일한 선박을 건조해 인도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반면 한국은 각 선사들이 요구하는 사양과 설계에 맞춰 선박을 건조했으며 지속적인 연구개발은 글로벌 선사들에게 일본 대비 경쟁력 있는 가격에 일본 못지않은 품질의 선박을 맞춤제작하는 조선소로 인식되는 결실을 얻게 됐다.

이와 같은 노력의 결과는 그리스를 비롯한 메이저 선사들의 지속적인 발주로 이어졌다.

안젤리쿠시스그룹(Angelicoussis Group)은 지난 1994년 대우조선에 첫 선박을 발주한 이후 지금까지 컨테이너선, LNG선 등 총 88척에 달하는 선박을 발주했으며 머스크(A.P. Moller Maersk)는 현대중공업에 90척, 대우조선에 55척 등 양사에만 145척의 선박을 발주했다.

삼성중공업 역시 홍콩 OOCL(Orient Overseas Conainer Line)로부터 45척, 캐나다 티케이(Teekay)로부터 선박 45척 및 FPSO(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 1기를 수주했으며 스위스 MSC(Mediterranean Shipping Co, 31척),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Petronas, 31척), 캐나다 시스팬(Seaspan, 28척)과도 긴밀한 협력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성동조선은 최근 그리스에서 열린 포시도니아에서 차코스(Tsakos)와 다시 한 번 유조선 건조계약을 체결하며 변함없는 유대관계를 과시했다.

차코스는 지난 2006년 이후 지금까지 총 15척의 유조선을 성동조선에 발주했으며 2012년 준공된 성동조선 직장 어린이집 ‘성동마리아차코스어린이집’은 활발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쳤던 고 마리아 차코스의 이름에서 따왔다.

나비오스, 토마소스, 코스모십 등 그리스 선사들로부터 28척의 선박을 수주한 바 있는 대선조선은 피더 컨테이너선과 소형 석유화학제품선 시장에 주력하며 흥아해운(15척), 남성해운(11척), 고려해운(6척) 등 국내 중소 선사들과의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내 중소조선소들이 대부분 사라진 상황 속에서 대선조선의 행보는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형 조선소에만 관심이 몰리고 있으나 중소형 선박을 건조하는 중소조선소가 없다면 국내 선사들은 일본이나 중국 조선소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며 “그럴 경우 국내 조선 및 기자재 업계는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글로벌 선사들과의 협력관계 강화를 통해 한국 조선업계가 구축한 글로벌 ‘조선강국’으로서의 위상은 세계 최대 해운국가인 그리스의 선단지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클락슨

메이저 선사들과의 긴밀한 협력관계로 구축한 한국의 ‘조선강국’ 위상은 세계 최대 해운국가인 그리스의 선박지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그리스가 보유한 선단은 총 3억3300만DWT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선단 가치(910억 달러)와 발주잔량(2420만GT), 지난해 선박 투자금액(69억 달러, 117척)은 각각 3위에 올라 있다.

그리스 선단에서 한국 조선업계가 건조한 선박은 1억4870만DWT로 일본(8450만DWT), 중국(8180만DWT)과 상당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특히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선박은 286척으로 글로벌 조선소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선사들이 한국 조선업계와 협력관계를 이어가는 이상 일본이 한국에 빼앗긴 선사들을 되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글로벌 시장을 이끌어가는 메이저 선사들은 선박 가격이 100만~200만 달러 싸다는 이유로 원하는 시기에 우수한 품질의 선박을 인도하는 조선소를 버리고 중국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는다.

극심한 경기침체로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글로벌 ‘조선빅3’마저 경영위기에 빠지면서 한국 정부와 채권단은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조선소 설비감축을 강요하고 있다.

호황기 넘쳐나는 선박 수요를 맞추기 위해 늘렸던 설비들이 지금은 과도하게 비춰질 수밖에 없으며 조선사들은 각각의 사정에 맞춰 구조조정에 나설 필요가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 조선업계의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채 획일적인 구조조정과 설비감축이 이뤄진다면 경기회복 이후 늘어나는 선사들의 선박 건조수요에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럴 경우 선사들은 당장 필요한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를 찾아 일본이나 중국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며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구축한 선사들과의 유대관계도 멀어지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조선업계는 그동안 낮은 선가와 자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수주활동을 펼쳐왔으며 비용에 민감한 선사들이 이와 같은 중국의 마케팅에 관심을 보이고 선박을 발주해왔다”며 “이들 선사는 대체로 싼값에 선박을 발주해 5년 정도 운항한 이후 중고선을 처분함으로써 이익을 챙겼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시장을 이끄는 메이저 선사들은 장기적인 시장 전망에 따라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전략적인 사업 파트너와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통해 시장선도자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며 “이런 선사들이 한국에 선박을 발주할 곳이 없어 중국으로 발길을 돌리게 된다면 한국 조선업계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