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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선, 해답은 있다-끝]남들에겐 너무 먼 ‘조선강국’의 꿈

브라질, 인도, 러시아 등 정부차원 조선업 육성 나섰지만 한계 절감
기술력·경험·인프라 갖춘 조선산업은 국가경제 근간…자부심 가져야

신주식 기자 (winean@ebn.co.kr)

등록 : 2016-06-15 16:25

한국 조선업계에 대한 구조조정 광풍이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글로벌 ‘조선빅3’까지 번졌다. 비용절감을 비롯한 구조조정도 시급한 상황이나 해운산업과 함께 전략산업이자 세계 1등을 자부하는 한국 조선업이 현재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글로벌 조선강국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도 필요한 시점이다. 여기서는 ‘조선빅3’를 중심으로 한국 조선업계의 위기와 글로벌 조선시장에 대해 돌아보고 앞으로 한국 조선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편집자 주]

지난해부터 불거진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글로벌 ‘조선빅3’의 대규모 손실과 구조조정으로 인해 한국 조선업계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자국 선사의 발주지원에 힘입어 글로벌 수주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중국에 빗대 한국에서의 조선산업은 이제 저물어가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여전히 ‘조선강국’으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한국의 조선산업을 부러워하며 자국 조선산업을 키우고자 애쓰는 국가들이 있다.

▲ 브라질 최대 조선소인 EAS(Estaleiro Atlantico Sul) 전경. EAS를 통해 한국과 같은 ‘조선강국’이 되겠다는 브라질의 꿈은 결국 꿈으로 그치고 말았다.ⓒ삼성중공업

브라질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2003년부터 2010년까지 브라질을 이끌었던 룰라(Lula da Silva) 대통령은 1980년대 일본과 함께 조선강국으로 불린 브라질 조선산업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아낌없는 지원에 나섰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와 산토스 해안으로부터 약 300km 떨어진 암염층 심해에 막대한 석유 및 가스자원이 매장돼 있다는 사실은 룰라 대통령으로 하여금 자국 조선산업을 부흥시켜야 하는 명분이 됐다.

드릴십을 이용한 시추부터 FPSO(부유식 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를 이용한 원유 생산, 셔틀탱커 등 유조선을 이용한 원유 운송까지 모든 과정에서 필요한 설비 및 선박을 자국 조선소에서 건조함으로써 수백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브라질을 명실상부한 선진국 반열에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룰라 대통령의 꿈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소형 선박을 건조하다 쇠퇴한 브라질 조선업계는 변변한 설비도 없었으며 용접을 할 수 있는 사람조차 구하기 힘들었다. 이에 룰라 대통령은 자국 최대 조선소인 EAS(Estaleiro Atlantico Sul) 건설과 첫 번째 선박의 건조 및 진수를 위해 삼성중공업에 기술지원을 요청했다.

브라질 해군 영웅 이름을 딴 EAS의 첫 번째 선박 ‘주앙 칸지두(Joao Candido)’호는 이와 같은 삼성중공업의 기술지원을 받아 지난 2010년 5월 진수됐다. 수에즈막스급 유조선인 이 선박의 진수식에는 룰라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며 기쁨을 함께 나눴다.

그러나 브라질 조선산업 부흥에 대한 기대감은 거기까지였다. 삼성중공업의 기술지원이 끝난 이후 ‘주앙 칸지두’호는 진수에서 인도까지 2년의 시간이 더 걸렸으며 이는 브라질 조선업계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 사례로 기록됐다.

자국산업 부흥이 정치생명과도 같았던 룰라 대통령은 끝까지 자국건조를 포기할 수 없었고 룰라 대통령의 뒤를 이어 부임한 지우마 호세프(Dilma Rousseff)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삼성중공업이 협력관계를 정리한 지난 2012년 이후 EAS는 새로운 기술지원 파트너로 일본 IHI마린(IHI Marine)을 불러들였으나 IHI마린 역시 올해 초 지분정리와 함께 브라질을 떠났다.

EAS는 IHI마린과 기술지원 협약을 체결할 당시 페트로브라스(Petrobras)의 유조선 계열사인 트랜스페트로(Transpetro)로부터 ‘주앙 칸지두’호를 포함해 총 22척의 유조선을 수주잔량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페트로브라스가 전·현직 대통령까지 연루된 초대형 비리로 무너지며 미래를 기약할 수 없게 됐다.

브라질과 마찬가지로 영토의 대부분이 바다에 둘러싸인 인도 정부 역시 자국으로 수입하는 액화천연가스를 자국 조선소가 건조한 선박으로 운송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인도 국영가스기업인 가일(Gail, Gas Authority India Limited)은 글로벌 선사들을 상대로 용선 입찰을 실시하며 미국의 셰일가스 수입을 위해 총 9척의 LNG선을 발주한다고 밝혔다.

입찰을 통해 3개 선사가 각 3척의 LNG선을 운항하며 이중 각 1척의 선박은 인도 조선업계가 건조한 선박이어야 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

군함을 건조한 실적은 있으나 LNG선 건조경험이 없는 자국 조선업계를 지원하기 위해 가일은 기술력과 경험을 갖춘 한국 조선업계와 컨소시엄을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입찰에 참여하는 선사가 한국 조선사와 팀을 이루고 한국 조선사는 2척을 건조해 인도하는 대신 1척에 대해서는 인도 조선사가 건조할 수 있도록 기술지원에 나선다는 것이다.

이 조건으로 인해 지난 2013년 본격화된 용선입찰은 유찰을 거듭했다. 가일 측이 인도에서 건조되는 선박의 납기를 6년 후인 2022년 중반 이후부터로 배려했음에도 인도지연에 따른 모든 책임을 선사가 지도록 한다는 위험부담을 감수하며 이 프로젝트에 뛰어들 수 있는 선사는 아무도 없었다.

한국을 제치고 ‘조선강국’이 되겠다는 중국조차도 LNG선을 건조한 경험이 있는 조선소는 후동중화 정도에 불과하다.

중국조차도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LNG선 건조를 설비부터 기술력, 경험이 전무한 인도 조선소에 맡긴다는 것은 선사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며 인도 정부의 지나친 욕심에 불과하다는 것이 번번이 계속된 유찰로 입증된 셈이다.

자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기대감을 품은 코친조선소(Coshin Shipyard), 피파바브(Pipavav Defence & Offshore Engineering), L&T(Larsen & Toubro) 등 인도 조선소들은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의사를 밝히며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한국의 ‘조선빅3’와 기술협력 협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피파바브와 L&T는 결국 입찰에 참여하지 못했으며 삼성중공업과 기술지원 협약을 체결한 코친조선소만 남게 됐다. 삼성중공업으로서는 어느 선사가 용선사로 결정되더라도 6척을 수주하고 3척에 대한 기술지원에 나설 수 있게 됐으나 앞으로의 전망이 불확실한 만큼 장담하기에는 아직 이른 상황이다.

▲ 한국 조선업계가 건조한 가스선 전경.ⓒ각사

러시아도 자국 조선산업 부흥을 위해 지난 2007년 ‘조선산업 육성을 위한 대통령령’을 발표했으나 현재까지는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없다.

자국 해양석유 및 가스탐사 등에 필요한 생산설비와 선박을 자국 조선소에서 건조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러시아 국영조선그룹(USC, United Shipbuilding Corporation)은 2009년 대우조선과 블라디보스토크에 위치한 즈베즈다(Zvezda) 조선소 현대화 협약을 체결했다.

USC는 군함 건조가 주력이던 즈베즈다 조선소의 부지를 확장해 야말, 슈토크만, 사할린 등의 지역에서 유전 탐사 및 가스전 개발을 위한 설비와 여기서 생산되는 자원의 운송을 위한 선박을 건조한다는 계획이었다.

대우조선은 조선소 건설과 설비 및 선박 건조를 위한 기술지원에 나서는 대신 일부 설비 및 선박을 수주함으로써 수익을 올린다는 조건이다.

하지만 이후 즈베즈다 조선소의 현대화 사업은 진척을 보이지 않았으며 대우조선의 기술지원 협약도 아직 유효하다.

그러나 러시아는 지난 2014년 대우조선에 ‘야말 프로젝트’ 관련 15척의 쇄빙LNG선을 발주하며 자국건조는 아직 먼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한국 조선업계도 현재는 일반 상선 건조하듯이 LNG선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20년 전만 하더라도 LNG선 건조는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다.

한 척의 선박을 건조하기 위해서는 인력과 기술력도 중요하나 가까운 거리에서 선박기자재를 제작해 공급할 수 있는 기자재업체들이 있어야 하며 국산화를 어느 정도 이뤄냈는지에 따라 수익성도 달라진다.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 조선소가 위치한 거제는 약 25만명의 전체 인구 중 20만명 정도가 조선업과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거제에서 멀지 않은 부산, 창원 등의 지역에는 선박 및 해양플랜트에 들어가는 각종 기자재를 제작하는 업체들이 밀집해 있다.

기자재업체와 협력업체가 한 조선소와 거래를 하는 것은 아니므로 이들 업체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대우조선이나 삼성중공업에 포함시킬 수는 없으나 이와 같은 관련산업을 포함하면 한 국가에서 조선산업은 조선소가 위치한 지역경제의 근간을 이룰 만큼 중요하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지속되며 한국 조선업계도 힘든 시기를 버텨내고 있다. 대규모 손실과 이에 못지않은 국책은행의 자금지원이 이어지며 정부와 채권단, 그리고 언론에서는 비판과 책임론이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국가 전략산업이라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한 국가에서 우수한 품질의 선박을 꾸준히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가 있다는 것은 일부 국가에게 반드시 이루고 싶으나 이루기에는 너무나도 먼 꿈같은 얘기에 불과할 뿐이다.

짧게는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설립 이후 40여년, 길게는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설립 이후 80년을 이어온 한국의 조선산업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