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시간 : 2017년 11월 21일 17:31
EBN
EBN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뉴스스탠드
실시간 News

[현대 커리지호 승선기-1] "선장님, 상하이 언제 도착해요?"

8600TEU급 현대 커리지호, 부산-상해 구간 승선
시간과의 사투 "하루 늦어지면 손해는 1억원"

황준익 기자 (plusik@ebn.co.kr)

등록 : 2017-11-02 07:31

▲ 부산신항에서 적하작업이 이뤄지고 있다.ⓒ현대상선
[부산·상하이= 황준익 기자] "올 스탠바이! 올 스테이션!"

3등항해사(3항사)의 힘찬 목소리가 부산신항에서의 출항 준비를 알린다. 24명의 선원들은 각자 위치에서 소리 없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갑판부 및 기관부원들과 함께 1항사는 선수에서 2항사는 선미에서 부두에 묶여있던 무어링라인(계선용 로프) 푸는 작업을 진행한다. 선장은 선교(브릿지)에서 무전기를 통해 모든 작업을 통제한다. 도선사(Pilot)가 탑승하면 본격적인 출항이 시작된다.

"슬로우 어헤드(미속전진)", "스톱엔진". 도선사 지시를 선장이 브릿지 내 선원들에게 전달하자 부산신항 5부두 부산신항컨테이너터미널(BNCT)에 정박해 있던 8600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현대 커리지'호는 부두에서 조금씩 멀어진다.

이때 선박에 줄로 연결돼 있던 예인선(터그보트) 두 척은 도선사의 지시로 당기고 밀며 선수를 돌린다. 출항 시 브릿지 내에는 등화관제를 실시해 작은 불빛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만큼 정교하고 예민한 작업이다.

선미가 외해 쪽으로 돌려지고 부산신항을 빠져나가면 도선사와 터크보트는 떠난다. 이제는 선장이 운항을 지휘한다.

"쓰리투제로", "쓰리제로원". 선장이 진로의 각도를 불러주면 갑판수는 복명복창과 함께 '오토파일럿(자동조타장치)'의 키를 잡고 방향을 조정한다.

선박에 속도가 붙으면 오토파일럿 설정에 맞게 자동 운항된다. 본격적인 항해가 시작된 것이다. 선장이 직접 키를 잡고 운항할 것이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 도선사(왼쪽)와 정영기 선장이 출항 준비를 하고 있다.ⓒ현대상선
현대 커리지호는 광양-부산-상하이-닝보-세코-싱가폴-포트킬랑-나바샤바-문드라-카라치-포트킬랑-싱가폴-센젠-홍콩을 운항하는 CIX노선을 담당하고 있다. 1항차당 42일간 총 6척이 투입된다.

길이 339.6m, 너비 45.6m 높이 24.6m로 컨테이너를 쌓아 올리면 건물 12층 높이에 이른다.

기자는 지난달 26일 부산-상하이 구간을 탑승했다. 부산에서 컨테이너 3092TEU를 싣고 상하이서 1714TEU를 내리는 스케줄이다.

현대 커리지호 갑판(데크) 넓이는 축구장 1개 반이 들어가는 크기다. 한 바퀴를 도는 데만 2시간가량이 걸렸다.

선수에는 닻(앵커) 2개, 무어링라인 6개가 위치해 있다. 무어링라인은 선박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만큼 손으로 들어올리기에 무게가 상당했다.

데크 곳곳에는 소방시설과 구명정, 구명조끼 등도 설치돼 있다. 데크를 책임지는 강민성 1항사는 특별히 구명정 내부를 공개했다. 총 36인승으로 좌석에는 각 선원들의 위치가 표기돼 있었다. 또 좌석 밑에는 비상식량이 구비돼 있는 등 생존을 위한 장치들이 눈에 띄었다.

선미에 이르자 선수와 같은 6개의 무어링라인이 있다. 특히 선미에는 선원의 모습을 한 허수아비와 철조망이 존재한다.

강민성 1항사는 "해적들이 보통 선미 쪽으로 넘어온다"며 "선박 내에는 해적들에 대비한 선원대피공간도 있다. 위치는 보안사항이다"고 말했다.

한층 내려간 데크에는 타기실이 있다. 거대한 조향장치를 볼 수 있는 곳으로 브릿지에 있는 오토파일럿이 움직이는 대로 조향장치의 큰 파이프(4개)가 작동한다. 타기실 주변에는 선박에 타공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방수자재들도 구비돼 있었다.

강민성 1항사는 "비상시에는 타기실에서 직접 수동으로 작동이 가능하다"며 "3달에 1번씩 훈련할 정도로 정말 중요한 장치다"고 강조했다.

▲ 현대 커리지호 14기통 엔진.ⓒ현대상선
데크를 둘러보고 나니 선박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 궁금했다. 기관통제실로 내려가자 헬멧과 귀마개부터가 주어진다. 기관실 내부에는 엄청난 소음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3개 층으로 이뤄진 기관실에는 엔진, 발전기, 연료탱크 등 선박운항부터 물, 냉난방시스템 등 선원들의 생활에 필요한 장치들까지가 모두 들어서 있다.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기의 경우 총 4대로 1대당 3300kWh를 생산한다.

현대 커리지호의 엔진은 규모부터가 압도적이다. 14기통으로 엔진의 높이는 기관실 3층에 달한다.

박치병 1등기관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엔진이다"며 "머스크 선박도 최대가 12기통이다"고 자랑했다. 선박의 연료는 품질이 낮은 벙커C유를 사용하는데 1항차에 보통 2500t이 소모된다.

기관실에서 가장 밑에 층에는 샤프트(Shaft)가 위치해 있다. 거대한 파이프 모양의 샤프트는 엔진에서 프로펠러로 동력을 전달해 주는 축이다.

샤프트는 선외측의 프로펠러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선체 밖으로 나오는 곳에는 바닷물 유입을 방지하는 스턴튜브(Stern tube) 장치가 있다.

26일 오후 11시에 출발해 28일 오전 9시께 상하이항에 도착하는 일정이었지만 태풍의 영향으로 입항하려는 선박들이 밀리면서 현대 커리지호는 도착 예정일에 앵커링 실시 후 대기했다.

선장의 명령과 1항사의 통제하에 선수에서 갑판부원들이 닻(앵커)를 내렸다. 쇠사슬처럼 생긴 샤클(Shackle)은 1샤클당 27.5m, 10t으로 총 14개 샤클로 이뤄져있다. 앵커머리 무게만도 15t에 이른다.

"브레이크 오픈". 샤클을 잡고 있던 브레이크가 풀리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앵커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강민성 1항사는 "중력으로 빠르게 내려가기 때문에 브레이크가 고장 나면 샤클이 다 풀려 앵커가 끊어지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한다"며 "앵커링을 외부인에게 공개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 상해항 인근에 수많은 선박들이 오가고 있다.ⓒ현대상선
만 하루를 정박한 이후 29일 오전 다시 운항을 시작했다. 브릿지에 올라와 보니 각국의 선박들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나라 선사들의 선박도 보였다. 우리나라 수출입 물량의 99%가 바다를 통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오후 3시께 상해항 접안 준비가 시작됐다. 입항절차와 마찬가지로 중국 도선사가 탑승해 입항을 주도한다.

상하이항으로 들어가는 길은 양자강 하류로 조류가 세고 수심이 낮다. 더욱이 당시 태풍이 심해 도선사가 늦게 올 정도로 날씨가 좋지 않았다.

정영기 선장은 "상해항 입항 시 정해진 수로 폭이 100m에 불과하다. 수로를 벗어나면 모래가 많고 수심이 낮아 선박이 얹혀버린다"며 "해저면이 모래여서 수심이 수시로 바뀐다"고 설명했다.

수로 양끝에는 빨간색과 초록색 부표가 떠있어 그 사이로 지나가야 한다. 수심을 깊게 하기 위해 선박 주변에는 준설선(모래를 파내는 선박)이 보였다.

출항과 달리 터그보트가 3척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긴장된 분위기는 여전했다. 특히 바람이 심하게 불어 도선사와 선장, 항해사들은 더욱 예민한 모습이었다.

▲ 상해항 접안을 위해 터그보트가 현대 커리지호를 밀고 있다.ⓒ현대상선
28일 오전 도착이었던 일정은 결국 29일 오후 7시께 접안이 마무리됐다. 30일 오전 10시 30분 멀미와 함께 하선했다. 강민성 1항사는 "상해항 접안이 이틀이나 지연된 적은 드문 일이다. 운이 좋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컨테이너는 시간이 생명이다. 현대 커리지호의 경우 하루 연료소비량이 280t(26kn 기준), 최소소비량은 90t(15kn)이다. 스케줄이 늦어지면 선박의 속도를 높여야하기 때문에 연료비는 대폭 증가하게 된다.

정영기 선장은 "하루만 늦어져도 1억원 정도의 손실이 발생한다. 정시성이 선사의 경쟁력이다"며 "선사의 터미널 확보가 이렇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8월 말 기준 현대상선의 선박 운항 정시성(얼라이언스 포함)은 85.4%로 전월 대비 1.3%포인트 상승했다. 현대상선은 조사 대상 상위 18개 글로벌 선사들의 평균 운항 정시성 75.2%보다 10.2%포인트 높고 순위는 세계 4위에서 1위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