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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船)의 정석]수주에서 인도까지_①

- 감동과 환희로 빛나는 배의 탄생, 시작은 고객과의 신뢰

김홍군 기자 (kiluk@ebn.co.kr)
조슬기나 기자 (seul@ebn.co.kr)

등록 : 2010-03-10 13:01

저는 ´세계 조선 1위´에 빛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축구장 2~3개 크기와 맞먹는 저는 ´떠다니는 공장´, ´수출역군´으로 불리죠. 몸값도 수백억에서 수천억, 심지어 수조원에 달하기도 하는 ´비싼 존재´랍니다.
단단한 철판으로 만들어져 둔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래뵈도 해외여행을 즐겨요. 저와 제 친구들이 가보지 않은 나라는 거의 없다니까요. 가전제품, 의류, 과일부터 철광석, 곡물까지 제가 실어나르는 물품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요.
이런 제가 탄생하기까지는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하답니다. 제가 어떻게 만들어져서 새 주인에게 가는지, 세계 최대 규모의 조선사인 대우조선해양을 찾아가 그 과정을 소개해드릴게요.<편집자 주>

▲ 지난 2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열린 명명식에서 스폰서로 참가한 Maren Riehl씨가 도끼로 밧줄을 끊는 세레머니를 하고 있다.

"I name this ship ‘MAKITA’(나는 이 선박을 ‘마키타’호로 명명하노라)."

지난 2일 오후,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의 북동쪽 안벽에서는 새로 지어진 배의 탄생을 축하하는 잔치(명명식)가 벌어졌다.

하얀 창모자를 쓴 레이디 스폰서(Lady Sponsor)가 배의 이름을 부르며 도끼로 줄을 끊자, 꽃 단장을 한 배 한 척이 그녀의 부름에 답이라도 하듯 기적소리를 세 번 연속해서 울렸다.

선박에 달린 꽃바구니에서 뿌려진 축하의 ´종이눈´은 악대의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추듯 흩날렸다.

▲ ´가족의 탄생´.."볼 때마다 새롭다"
이날 명명식을 가진 배는 대우조선해양이 지난 2007년 독일 선사로부터 수주한 4천38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지난해 4월 강재절단(스틸커팅) 후 11개월의 건조기간을 거쳐, 이날 ‘MAKITA´라는 이름으로 첫 걸음을 내딛었다.

조선소와 선주측 관계자들이 모여 새로 건조된 선박의 이름을 짓는 ‘명명식(命名式)’은 선주들에게 있어 ‘가족의 탄생’을 축하하는 파티다.

세레모니의 주인공은 단연 선박을 명명하는 스폰서. 이날 스폰서로 나선 선주측 관계자 Maren Riehl씨는 선박에 연결된 밧줄을 도끼로 절단하고, 보자기에 싸인 샴페인을 선박으로 던지며 배의 ´안전항해´를 기원했다. 이는 태아가 태어날 때 어머니와 아기 사이의 탯줄을 끊고, ´세례´를 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새 선박의 탄생에 관여한 조선소 관계자들에게도 명명식은 감회가 깊을 수 밖에 없다. 철판가공, 조립, 도장, 탑재 등 직접 건조작업에 참여한 사람은 물론, 영업에서부터 설계, 자재조달, 품질관리 등 다양한 분야의 많은 사람들이 한 척의 배를 만드는 작업에 직∙간접적으로 동참한다.

▲ 지난 2일 명명식을 가진 4천380TEU급 컨테이너선 ´마키타´호.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연간 60여척의 상선을 인도하는 대우조선의 경우, 일주일에 한두차례씩 명명식을 열게 된다"며 "자주 열리는 행사라 하더라도 매 선박이 건조돼 인도될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고 언급했다.

이날 자신의 이름을 갖게 된 ‘마키타’호는 향후 선주측에 인도돼 남아메리카~아시아 간 노선에 투입될 예정이다.

컨테이너 선박이 해체(스크랩)되기 전까지 평균 운항되는 시간은 25~30년 가량. 생일을 맞이한 마키타호의 본격적인 여정은 이제 막 펼쳐지는 셈이다.

▲한통의 메일이 대박으로..영업의 시작은 ´고객관리´
오랜 기다림과 산고 끝에 이제 막 인생의 항해를 시작한 마키타호가 잉태된 것은 3년 전이다. 지난 2007년 3월 당시 라이너마케팅팀에 근무하던 윤승구 과장(현 해양영업팀 차장)은 영국에 근거지를 둔 브로커인 하우로빈슨(Howerobison)사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선주를 밝히지 않은 이 메일은 발주하고자 하는 선박의 종류와 척수, 예상금액을 담은 거래제안서(인콰이어리)로, 선주사로부터 의뢰를 받은 브로커가 대우조선에 발주문의를 해 온 것.

선박발주는 통상 브로커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윤 차장은 “선주가 직접 제안을 하거나, 요즘 같은 불황기에는 조선소가 역으로 거래를 제안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선박 발주는 브로커를 통해 이뤄진다”고 말했다.

발주문의를 받은 조선소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도크스케줄을 확인하는 일. 납기내 건조가 가능한지를 체크해야만, 선주측의 제안에 응할 수 있다. 더욱이 당시는 선주들의 발주가 절정을 이뤘던 시기로, 가격도 중요하지만, 선주가 원하는 기간내 선박을 건조해 인도할 수 있는 지가 중요했다.

윤 차장은 “다른 때도 마찬가지지만, 2007년은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선박 발주가 많았던 때이다”며 “수주에서 가격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납기”라고 강조했다.

이후 수주협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브로커를 통해 영업설계가 들어간 견적서를 넣고, 가격조정을 위한 한 차례 보완을 거쳐 4척의 컨테이너선에 대한 건조계약을 체결한 것이 그 해 5월이다.

거래제안서를 받은 시점부터 최종계약까지 2개월 밖에 걸리지 않은 것. 최종계약서 사인도 팩스를 통해 이뤄졌다.

상선의 경우 선주측의 제안을 받고, 협상을 거쳐 최종계약에까지 이르는 시간은 짧게는 1개월 내외부터 1년이 걸리기도 한다. 드릴십과 FPSO, 리그 등으로 대표되는 해양플랜트는 수년이 수요되는 것도 다반사다.

▲갑을이 뭐야?..신뢰로 수주난 돌파
조선사들은 해외에 있는 선주들과의 상시적인 접촉 및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 지사를 두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런던(영국), 아테네(그리스), 오슬로(노르웨이), 두바이, 휴스턴(미국), 동경(일본), 퍼스(호주) 등지에 10개의 지사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적게는 1~2명에서 많게는 5~6명까지 포진한 지사가 하는 일은 상시적인 고객관리다. 해외 곳곳에 포진한 선주들과 수시로 만나 신뢰를 쌓고, 때로 그들의 민원까지 해결해 주는 영업의 첨병역할을 그들이 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영업팀 왕삼동 부장은 “표면적으로 가격과 납기가 조선영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이긴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선주와의 신뢰다”며 “이는 앙골라 국적선사인 소난골의 사례에서도 잘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997년 유조선 5척을 발주한 이후 추가 인연이 없었던 소난골은 10년 뒤인2007년 잊지 않고 다시 찾아와 3척의 LNG선을 발주한 데 이어 지난달에도 4천억원 규모의 원유운반선 5척을 발주하는 등 대우조선과 진한 우정을 쌓아가고 있다.

남상태 사장은 지난달 계약식에서 “조선시장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도 발주해준 소난골 사에 감사하다”며 “이번 계약은 단순한 거래를 넘어 양사간의 오랜 파트너십의 결정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 대우조선해양 남상태 사장(오른쪽)이 지난달 20일(현지시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소난골사 마누엘 비센테 회장(왼쪽)과 건조계약을 체결한 뒤 악수하고 있다.
조선 영업에서 신뢰의 중요성은 양측의 만남의 자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조선사 측이 선주를 찾아가 식사나 골프, 등산 등을 함께 하게 되면, 선주측에서 호스트로서 경비를 내고, 선주측이 조선사를 찾아 오면 반대로 조선소측이 경비를 부담하게 된다. 흔히 얘기하는 갑을관계에서의 무조건적인 접대는 없다.

실제, 명명식 행사에서도 조선소 내에서 치러지는 당일 행사비용은 조선소가 부담하지만, 전야제나 식후 행사 비용은 선주측이 부담하는 게 관행이다.

왕삼동 부장은 “선주 입장에서도 큰 돈을 투자해 배는 짓는 만큼, 자신들의 배가 잘 지어질 수 있도록 조선사와 파트너십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며 “그동안 쌓아온 선주와의 신뢰를 바탕으로 수주불황을 극복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