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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N 칼럼] 울고 싶은 날

  • 송고 2023.04.24 06:00 | 수정 2023.04.24 06:00
  • EBN 관리자 (gddjrh2@naver.com)

최화인 초이스뮤온오프 대표

최화인 초이스뮤온오프 대표ⓒ

최화인 초이스뮤온오프 대표ⓒ

30대 이하의 연령층에선 낯설 수 있지만, 미국의 고아 소녀 캔디가 우연한 기회로 영국 귀족가문에 입양되었다가 제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휘말리면서 간호사로서 자립적인 삶을 개척해가는 성장담을 메인 스토리로 한 『캔디캔디』라는 만화가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꿋꿋하고 내숭 없는 드라마 여주인공 캐릭터를 ‘캔디형’이라고 지칭할 만큼 대중문화사적으로 남긴 족적이 큰 『캔디캔디』는 시대물이면서도 학원물이었고, 신분상승에 대한 대중의 통속적 욕망을 충족시키면서도 등장인물 간의 애정전선에서 막장 요소의 콜라보도 적지 않았으며, 하이틴 로맨스 속 명랑한 캐릭터와는 대조적으로 비극적인 서사도 포함돼, 장르물의 총합적 혼종 같은 작품이었다.


한국에서는 MBC를 통해 『들장미 소녀 캔디』라는 제목으로 1980년대 매주 일요일 아침 8시에 방영됐는데, 원작 만화의 인기가 워낙 대단해서 TV 만화도 당시로서는 파격적일 만큼 넓은 연령층에서 인기를 끌었다. 또 일본 스토리 작가와 작화가 간 저작권 분쟁이 길어지면서 완결 스토리가 나오지 못한 상태에서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버전의 해적판이 엄청나게 판매된 작품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방영되었던 TV 만화의 주제곡은 원작 스토리 작가 나기타 게이코가 직접 가사를 썼고, 국내 방영본은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의 「기찻길 옆」과 「낮에 나온 반달」, 「달맞이」, 「어린이날 노래」 등 수많은 동요를 만들었고 초대 방송위원장을 역임하신 윤석중 선생의 손을 거쳐 새롭게 작사됐다.


윤석중 선생이 작사하고 가수 혜은이가 부른 한국판 만화 주제곡은, 주인공 캔디의 굴곡진 인생과 내면의 강인함을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구술한 1·2절과, 전지적 관찰자 시점에서 캔디의 인생을 응원하는 후렴구로 구성됐다.


특히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던 캔디가 “나 혼자 있으면 어쩐지 쓸쓸해지지만 그럴 땐 얘기를 나누자. 거울 속의 나하고"라는 구절은 어린이용 만화주제곡으로서는 보기 드문 파격성과 고난극복의 창의성을 보여주는 전체 주제곡의 백미(白眉)다.


캔디가 고립적 상황에서 자신의 내면을 돌보고 치료하는 방법으로 사용했던 거울치료법이 최근 뇌졸중이나 복합 부위 통증 증후군(CRPS) 등의 통증 개선과 자존감 개선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적지 않게 발표된 것을 보면, 가사를 쓰신 윤석중 선생은 학술적 근거를 갖추기도 전에 자존감 회복과 내면의 상처를 극복하는 선지자적 해법을 제시해준 셈이다.


물론 만화 속 캔디는 실제로 무척 많이 운다. 그러나 현실에서 진짜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던 친구가 있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가 읽고 싶어지던 4월의 화사함에 취해 늦은 오후 나도 모르게 뜬금없이 친구에게 안부 전화를 했었다.


이른 저녁 술자리를 시작했다며 조금은 취한 목소리로 잘 지내고 있다던 친구는 이틀 뒤 부고를 전해 왔다.


고등학교와 대학 동문이라는 인연으로 학창시절 연애사와 첫사랑의 상대를 알고 있고, 낮술에 취해 수업 시간에 깽판 치던 모습도 직관한 친구였던 지라, 볼 때마다 지나간 내 흑역사를 안주거리로 소환하던 친구였다.


사족보행을 하던 이십대의 부끄러운 과거를 십 분 단위로 꺼내는 친구의 악취미에 질색을 하면서도, 투명한 유리조각처럼 반짝거리고 만지면 날카롭게 베이던 청춘의 한 시절을 기억해주는 이가 있어서 조금은 좋았었다.


그 친구가 기억하는 내 모습과는 무관하게, 내가 기억하는 학창 시절 친구는 언제 어느 시간에 학교에 가도 늘 단과대 입구에서 촌스러운 형광 연두색 단과대 티셔츠 차림으로 도서관 벽에 붙일 현수막이나 대자보를 쓰고 있었다. 그러다 아는 얼굴을 발견하면 큰 소리로 반갑게 인사를 걸어와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중년에 다시 만났을 때에도 친구는 스무 살의 그 모습 그대로 여전히 다정하고 활달했다. 달라진 것은 삶의 무게감 뿐이었다. 평생 5살에 머물러 있는 아이와, 고혈압과 심장질환을 앓는 아버지, 매일 신장투석을 받아야 하는 중증 치매의 어머니를 버겁게 감당하고 있는 가장으로의 삶이었다. 그리고 조금 뒤엔 매일 아침 7시에 시작하는 업무 회의에서 몇 시간씩 상사에게 욕을 먹는 일상이 더해졌음을 알게 되었다.


생존의 악전고투를 치르면서도 영업직 직원으로 수십 년을 보낸 덕분에 늘 웃는 얼굴로 늘 기운차고 털털한 모습을 잃지 않았지만, 술 취한 어느 밤엔 길바닥에 주저앉아 목 높아 울면서 전화를 걸어오던 날도 있었기에, 친구가 얼마나 절박하면서도 절망적인 마음으로 삶에 매달려 있었는지 나는 ‘조금’ 알았던 것 같다.


마지막 안부전화에서 “화창한 4월에 마로니에 공원을 지나 아날로그 감성이 있는 대학로 식당에서 점심이나 하자”고 약속해놓고는, 그렇게 부고를 전해온 친구가 참으로 괘씸하다. 약속이나 하지 말던지. 예약취소는 내 몫으로 남겨 놓고 가버렸다.


오가는 저 많은 사람들 중에 울고 싶지 않은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그러나 모두 같은 크기의 고통을 참고 있는 건 아니다. 친구의 몫은 유난히 크고 묵직했다.


띵해진 머리로 “독한 놈”이라는 욕이 숨 쉬듯 튀어 나왔지만, “불쌍한 놈”이라는 말도 날숨으로 이어졌다. 차라리 좀 울지. 좀 대놓고 힘들다고 징징거릴 것이지.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를 반복하는 친구에게 “네가 뭐 캔디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들어줄 리 없는 울음은 그저 참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서 딱히 더해줄 말도 없었다.


우는 것도 징징거림을 받아줄 상대가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아무도 들어줄 리 없는 울음은 그대로 삼켜진다. ‘힘들다’, ‘외롭다’, ‘괴롭다’는 스스로의 울음에 지치면 나조차 귀를 막고 듣질 않는다. 그때부턴 내 안의 울음은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변환된다.


계단을 오르는 그 짧은 순간에도 터져 나오는 고통으로 눈을 질끈 감아야 하는 날이 단 하루도 빠짐없이 채워진 일상에 떠밀려, 자기 안의 ‘힘들다’는 목소리를 잃어버리고 살다가 마침내는 물거품으로 사라진 인어공주처럼, 친구도 절박하고 절망적으로 붙잡고 있던 삶을 놔버리고 사라짐을 선택했다.


독하고 불쌍한 내 친구에게 이젠 좀 살만 한지, 숨 돌릴 만한 지 묻고 싶지만 끝내 답을 들을 수 없는 문자를 기다리며 오늘은 나도 소리 내 울고 싶어졌다.


삶은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을 거스르는 시간이다. 울고 싶은 마음과 그만 두고 싶은 마음으로 무겁게 내려앉을 땐 그냥 울고 말자. 그만 두지는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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