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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N 칼럼] 노동의 미래 vs 미래의 노동

  • 송고 2023.09.20 06:00 | 수정 2023.09.20 06:00
  • EBN 유재원 한국공인노무사회 부회장 외부기고자 ()

유재원 한국공인노무사회 부회장(법률사무소 메이데이)

유재원 한국공인노무사회 부회장(법률사무소 메이데이)

유재원 한국공인노무사회 부회장(법률사무소 메이데이)

벨러미라는 작가의 <뒤돌아보며(2000년에 1887년을)>라는 책은 유토피아 문학의 고전이라고 불리지만, 사실상 그가 그린 2000년은 ‘낫과 망치(노동사회)’, ‘노동 천국’과는 살짝 거리가 멀다. 어쩌면 누군가 보이지 않는 힘이 사회 전체를 관망하고 자원을 배분하며 인간들의 다변한 활동을 통제하는 것이 그려지기도 한다. 모든 사람을 노동에 투입시키고 40대에 노동시장에서 퇴역시켜서 행복을 꿈꾸게 한다는 설정이다. 물론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예상하는 미래계급사회론과 비교할 때는 무척 양호한 수준이랄까.


이 문제적 소설은, 노동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행복한(?) 유한계급이 갑자기 2000년 노동 유토피아로 건너와서 ‘노동해방의 천국’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간접 경험하는 이야기다. 물론, 작가는 19세기 말에 자본주의가 완전히 비뚤어져서(弊害) 자본가와 노동자 각 계급으로 양분변이된 것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가 보기에, 19세기는 사회 전반에 있어서 노동의 비극이 존재했으며 ‘노동=하층’, ‘차별’, ‘불행’이라는 도식이 가능했던 논리를 풀어놓고 있다. 그렇기에 21세기 노동해방의 천국(天國)에서 사람들이 적정노동 이후 온전히 자신의 삶(Life)을 행복하게 누린다는 설정(fiction)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큰 반향과 깨달음을 준다.


그런데, 노동은 종국적으로 사라질까. 노동의 미래는 과연 종식되는 것으로 끝나는가.


최근 필자는 노동부와 여러 학회에서 고심하는 ‘고령사회의 인력구조 문제’에 관한 논의에 합류한 바 있다. 노동의 미래는 4차산업혁명 이후 노동시장의 재편, 고령자와 퇴직자 등의 노동시장 합류 등으로 계속적인 논쟁이 이어질 것이다.


물론 모든 사회에서 그러한 사정을 충분히 예견하고 대책을 마련하겠지만, 현재 정리되는 바에 따르면, 노동의 미래는 1) 여전히 노동을 제공하는 주체가 있을 것이고 2) 그 연령은 상향되고 그 계층은 다변화하여 노동시장은 참으로 복잡해질 것이며 3) 노동과 자본의 상호 분배적 (생산) 자원 배치는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들이다.


실례로 최근 일본과 유럽의 노동시장을 분석하면, 1) 노동 시장의 다변화(연령다변화, 인종다변화, 국적다변화 등)가 지속되고 있고 2) 임금 구조의 다층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임금피크제, 외국인노동자차등임금제 등) 3) 근로환경의 다양화(소규모 사업장의 완전무고용 또는 대량생산체계의 비고용화 등 대면직종의 분화 또는 신(新)인력 수요 직종의 증폭) 등이 예상될 수 있다.


어느 사회이든 노동이 사회의 필수불가결한 가치재로 지속되나, 근로를 회피하거나 노동에서 자유를 추구하는 신종(新種) 유한계급이 다시금 형성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예를 들어 파이어족, 은퇴족). 마치 벨러미가 19세기 사회를 직접 경험하면서 비판했던 무노동 유한자산계급이 21세기에 다시금 등장할 수 있겠다.


다행인 점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나 벨러미의 <뒤돌아보며(2000년에 1887년을)>가 전망하듯이 현재 우리가 사는 작금의 세계는 노동해방사회가 실현되고 있지도 않고 노동-자본이라는 양분적 계급사회가 만연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공고한 계급사회는 (정작 노동자-인민을 위한다고 선언하는) 사회주의 추종국 몇몇에서만 확인되고 있다.


작금에도 전 세계인이 여전히 다양한 노동의 현장에서 각자의 직무를 다하고 있고, 간간이 시장경제의 질서에 따라 주기에 따른 파동(콘트라티예프파동)에 따른 경기상승과 경기침체를 체감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자본가와 노동자는 쉴 새 없이 자신의 재화(노동, 자본 등)를 적게 든 많게든 활용하거나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연인지 다행인지, 경제적 공황은 다행히 재발되지 않고 있다.


노동은 유가치할까. 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노동의 미래는 마치 미래의 노동을 예상하게 한다. 노동의 미래는, 아무리 기술 발전이 있고 유휴생산이 폭증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일거에 해방되거나’ ‘일거에 노동자들이 사라지는’ 현상으로 종식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이런 점에서 미래학자들의 펼치는 노동해방론은 참으로 그 실증과 증빙이 부족하다. 물론이겠지만, 노동자(근로자)가 전근대적인 노예처럼 (완전)종속적인 노동에 속박되는 퇴보는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인다. 이것은 이미 노동의 자유를 체험한 전 세계 구성원들이 예속적인 노동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다.


그렇다면, 미래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노동은, 그 자체의 사회적 필수불가결한 속성을 존중받으면서 영속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은 유럽에서 외국인 노동자 계층이 점차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는 면면(面面)들, 일본에서 고령자와 퇴직자가 다시금 경제주체로서 활발히 편입되는 면면(面面)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결국 미래의 노동은 소실(消失)점으로 향하면서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 또한 하나의 공공재이자 가치재로서 살아남아 사회경제적 재화로서 주체적인 ‘미래’를 열어갈 것이라고 본다. ‘미래의 노동’ 혹은 ‘노동의 미래’는, 미래사회에서 요구하는 방식대로 스스로 변이하면서 창조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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