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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N 칼럼] 노동의 예찬, 게으를 권리는 없다

  • 송고 2023.12.28 06:00 | 수정 2023.12.28 06:00
  • EBN 유재원 한국공인노무사회 부회장 외부기고자 ()

유재원 한국공인노무사회 부회장(법률사무소 메이데이)

유재원 한국공인노무사회 부회장(법률사무소 메이데이)

유재원 한국공인노무사회 부회장(법률사무소 메이데이)

성실한 노동자들은 탐욕스런 자본에 멸시당한다, 소외된 근로(die entfremedete Artbeit)를 하는 노동자들은 투쟁해야 한다. 노동계급의 몰락과 자본주의의 실패가 계급 투쟁을 일으켜 사회는 바뀐다.


한때 유럽을 흔들었던 공산주의를 창립한 마르크스라는 사람의 이야기다. 물론 마르크스 또한 “노동 계급은 위대하다”라고 하거나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다른 동물들과는 다른 존재를 형성한다”라고 하였다.


그는 딸에게 “너에게 줄 것은 자본이라는 내 책이 아니라, ‘자본(돈)’이 무척 중요하다는 점을 알려주는 거다”라는 명언(?)을 남겼고, 처가의 복된 유산으로 긴 유학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유토피아를 꿈꾸게 해줬다. 그 후 여러 공산주의, 사회주의 국가들은 끊임없는 희망(언젠가 찾아올 자본의 패망과 공산세상으로의 변혁)을 복제하면서 연이은 사회실험의 실패를 보여준다.


마르크스는 노동계급의 혁명을 외치면서도 노동가치론을 그대로 존중하였지만, 마르크스의 귀한 딸(제니 로라)이 맞은 남편(마르크스 사위)는 노동존폐론으로 확대될 수 있을 정도로 더 나아갔다. 폴 라파르그라는 청년은 “근로자들이 모두 지적인 황폐를 맞이하거나 생체의 파괴를 맞이하고 있다”라고 하면서 『게으를 수 있는 권리(Le Droit à la paresse, 1883)』라는 책을 유럽에 전파했다.


이 책에서 그는 “많은 노동은 고역이며 수치다”, “일할 권리는 존재하는가? 그럼 게으를 권리도 있지 않은가?”라고 당당히 선언한다. 이 책은 태고 이래로 인간 본연(자연)의 모습에서는 ‘일하는 인간’이 없었으며 산업혁명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퍼진 근로예찬론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고증하고자 했다.


물론 산업화 시대에 12시간 이상의 근로시간이 있었거나, 위험하고 유해한 노동환경에서 아동과 여성까지 노동을 해야 했던 것은 “고대 로마시대의 노예보다 못한” 상태였다. 이런 지적은 참으로 타당성이 있다.


그는 자본주의의 폭주 속에서 근로자들의 노동을 강요당했고 ‘성실한 노동’은 강요된 가치관의 주입에 따른 것이므로 (노예의) 노동으로 혹사당하고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을 비판했다. 결국 그는 노동과 근로를 혐오하고자 하는데, 노동에 매몰된 여러 인간 군상들을 신랄하게 조롱하고 긍휼히 여기고 있다.


그러면서 나태의 권리는 인간의 본태적인 자유라고 하면서, 결국 근로자들도 자본자들처럼 똑같이 ‘나태하고 게으를 권리’를 맘껏 향유하라고 하였다.


라파르그는 “단지 3시간이면 된다”, “그 이상의 근로는 자본가, 부르주아지, 유한계급을 살찌우는 것이다”라며 상당한 충격(brainstorming)을 주었다. 이후 근로가 결코 미덕이 아니라는 것은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도 동의한 부분이겠다.


그런데, 성실한 노동이라는 것이 강요된 믿음에서 비롯했다고 하는 라파르그의 기본 전제는 사실 노동을 대하는 근로자들의 다양한 가치관을 무척 단순하게 보고 하나의 논리로 획일화하는 측면이 있다.


산업혁명과 근대화 시기에 자본가와 사업주는 근로자들로부터 최대한의 근로시간을 확보하고 직장 내의 조직과 규율로써 나태와 방만을 다스렸던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 보인다. 마르크스에 이은 사회계층론, 계급지배론의 일환이기도 하다.


전 세계의 역사와 작금의 현실을 살펴보자.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어느 시대이건 어느 나라이건 교육현장에서 이탈하는 시점(나이)이 상당히 유사하다. 고등교육을 계속 받는 경우가 아닌 한, 사회구성원들은 성장기를 지나 자신의 삶을 정립하는 시점이 되면 사회의 강요에 따르지 않아도 “자신의 장래(미래)와 진로(직업)”을 이야기하고 미래를 현재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직업에 따른 성취를 이루어가게 마련이다.


물론 세습자본가, 벤처사업주가 되거나 공무적인 업무(public officer)를 수행하는 경우가 있지만, 광의의 범주에서 이들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노동에 종사하는 것이 맞는다. 특히 역사인들, 세계인들이 ‘왜’ 그처럼 노동에 일과의 상당시간을 종사하고 있었는지는 ‘노예근성’, ‘지배계급의 세뇌전략’, ‘생계유지의 곤란’ 등등 단순한 이유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든 근로자들이 유한계급이나 세습자본가처럼 게으를 권리를 맘껏 누려야만 인류의 평등·자유·박애에 부합한다는 논리들은 참으로 순진하다. 누군가에게는 생계를 위한 노동이므로 사회보장을 통해 생계만 해결되면 노동이 종식된다고 선언하는 것조차 억지스럽다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의 또 다른 가치들, 사람이 일하면서 느끼는 기쁨, 보람, 성취 등을 통하여 자부하는 (인간 본연의) 쾌락들까지도 무시하는 생각들이다.


물론 게으를 권리가 말하는 취지가 생산적인 휴식을 의미한다면 큰 의미를 가진다. “장시간의 근로를 배척하자”, “반복적인 근로에 매몰되지 말고 창의적인 일을 누릴 수 있도록 하자”, “일중독과 피로로부터 심신을 잠시 격리하도록 하자”라는 논리라면, 이 주장은 앞으로도 여러 노동 현장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최근 주4일제, 35시간 근로제 등등의 논의가 정치권에서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에서는 4.5일제나 40시간 준수 등의 대안까지도 고민하고 있는 추세다. 프랑스와 북유럽은 근로시간을 과거 주 6일제에서 현재 주 3~4일제로 과감히 바꾸었고 저축휴가제로 장시간 휴가사용이 가능하도록 바꾸었으나, 사회가 붕괴되거나 경제적인 빈곤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괴테가 여행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처럼, 스티브 잡스는 일터에서 벗어난 ‘쉼’, ‘휴식’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겼던 벤처사업가였다. 그는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과감히 깨부수었고 전 세계 사람과 언제 어디서나 통신으로 연결할 수 있는 세상을 이룩한다. 그는 열심히 일하고자 했지만 실제로 많이 일한 것이 아니었고, 남들보다 뛰어나고자 했지만 실제로 스스로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세상과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창조했다. 훗날 그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가장 존중하는 “창의적인 혁신가”로 불리게 되었다. 그렇기에 그는 (독특했지만) 성실한 근로자 중 한 사람이었고 단연코 나태한 권리를 누렸던 자본가로 불리지 않는다.


우리가 쉽게 간과하지만, 게으름은 맘껏 누릴 ‘권리(Right)’라기 보다는, 권리와 의무로 꽉 차 있는 근로의 삶에서 보장해야 할 휴식과 여가, 회복과 충전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하겠다. 그 시간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금 삶의 생각을 정비하고 일터에서 창조를 현실화한다.


종종 우리는 매번 근면과 나태, 성실과 방임, 전념과 소홀 등으로 이분법적인 사고에 익숙했다. 마치 양쪽의 권리가 팽팽하게 나뉘고 선택해야만 하는 것으로 오해하곤 했다. 그런데 노동과 근로는 인간 본연의 자아와 가치관을 이루게 해주는 공공재이므로, 노동이 권리가 될지언정 게으름과 나태가 그에 대응하는(상응하는) 권리가 될 수는 없다고 볼 것이다. 게으를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는 번영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행복을 이야기한다. 혹자는 나태와 게으름을 통해서도 그런 풍요가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그 결과의 충분조건이 아님을 안다. 어쩌면 노동은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답변들(미래, 행복, 번영, 풍요, 평화 등)에 충분조건으로 기여할 수 있는 소중한 가치재이자 공공재로 계속 존재한다. 우리는 그것을 꿈꾼다. 건강한 노동을 통해 우리 사회 구성원이 만들어 내는 행복한 환영(幻影)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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