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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N 칼럼] 노동의 분화, 진짜노동·가짜노동

  • 송고 2024.06.27 08:06 | 수정 2024.06.27 08:07
  • EBN 유재원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대표변호사 외부기고자 ()

유재원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대표변호사

유재원 법률사무소 메이데이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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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인류학자 뇌르마르크가 최근 <가짜노동>, <진짜노동> 시리즈를 발간했다. 그는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인류가 ‘가짜’노동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누군가 노동을 하지만, (그건) 노동이 아니다’라는 기묘한 연구다.


가령 어느 회사를 들여다보자. 책상에서의 무료함·지루함은 물론이거니와, 회의가 반복되거나 자료를 무한으로 늘여놓거나, 의미 없는 보고서들이 남발된다. 이건 대기업-중소기업은 물론이고 동·서양 또는 선진국·후진국에서 두루두루 전 세계 21세기에 현존한다.


노동이라는 것이 그 목적을 다하려는 것에 오히려 방해되는 가짜 행동들은, 결과적으로 노동의 성과를 내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근로자들의 양심 또한 무척 괴롭힌다. 물론, 가짜노동은 일부 근로자들의 방임·해태만이 문제되는 건 아니고, 시스템적으로 회사의 번잡스럽고 불필요한 업무절차에서 비롯한 측면도 있다.


가짜노동 현장을 보자. 회사의 관리자들은 상급자 보고나 외부적인 표출에 신경을 쓰고, 정작 업무의 질과 양을 높이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조직을 관리하는 것은 상급자의 위세를 계속 누리려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면서 상급자는 더 대우받거나 더 존중받고자 직장 내의 정치를 감행한다.


이러는 사이 일선 근로자들은 근로시간을 스멀스멀 단축하거나 업무를 회피하는데 골몰하게 되는데,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월급루팡’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조직의 누구도 그것을 꼬집어 문제 삼지 않는다. 회사가 꼭 생산성을 내야 하는 곳도 아니며, 월급루팡이라고한들 그 자체로 징계사유가 되지도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짜노동은 단순히 근로자의 게으름이나 나태에 그치지 않는다. 어느 시각에서 보면, 가짜노동에 휘말린 근로자는 애초에 무의미한 일을 하고 있다(이른바 ‘텅빈노동’). 시킨일을 성실히 일해도 그건 노동이 아니다. 때론 근로 당사자가, 당사자의 양심이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결코 동료나 조직에 보고하지 않는다.


그 굴레는 다시금 반복되고 심지어 옆사람(조직 전체)에까지 전염된다. 더 쉽게 일하고 더 편하게 일하고 궁극적으로는 더 적게(작게) 일하면서, 최대한의 인간다운 대우(보상)를 성취(?)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뚜렷해진다. 일의 능률과 숙련을 익히는 것에는 뒷전이고, 무작정인 반복 업무는 계속 확대 재생산한다.


그럼 ‘진짜노동’은 무엇인가. 아쉽게도, 연구자는 딱 어떠어떠한 것이 진짜 노동이고, 그러한 사례를 풍부하게 예시하지 않는다. 마치 그 진짜 노동이라는 것은 어떠어떠한 형체를 가지고 한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 연구는 가짜의 노동이라는 폐해를 극복하는 것이지, 그것은 그 진짜(GENUINE)로서의 노동을 제시하고자 한 것이 아닐 수 있다. 다만, 진짜 노동으로 가기 위한 조건은 설명될 수 있다.


1. 노동이라는 독립적인 가치를 존중받아야 한다. 그 노동이 결합되지 않는다면, 영리회사가 원하는 이윤이나 성과가 불가하다는 것이 확립되어야 한다. 결국 노동은, 불가결적이고 충분조건적인 독립재가 되어야 한다.


2. 노동, 그 자체에 어떠한 의도나 이용목적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은 근로자로서 그 업무에 종사하는 것이고, 노동이 ‘직장 생활(직업)의 안위나 안정’을 위해 존재한다고 볼 것이 아니다. (근로현장에서) ‘근로자의 일신이 편안하다. 일한 것보다 많이 급여를 지급한다’, ‘기타 복리와 후생이 뛰어나다’라는 식으로 노동의 존재가치(?)가 형성되는 것은 사회공동체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노동은 놀이와 무료(無聊)를 예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3. 노동이 (집단적인) 성과, 산출량, 성공 등을 위하여 과하게 몰입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이런 노동의 가치관이 바뀌고 있다. 성실 근면한 근로자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산업의 역군으로서 ‘죽음 힘을 다해’ ‘죽을 때까지’ 일하는 것이 존중받는 시대가 아니다. 도리어 이런 극한의 노동에 대하여 ‘사람을 갈아넣는다’라는 식으로 비난과 역효과를 가져오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는 극한의 노동량을 경험하고 누군가는 또 그에 모자라는 노동을 하게 되는데, 노동현장의 근로자를 이렇게 이분할 수 없다.


4. 마지막으로 노동에 그 어떠한 상한 한계나 최저기준이 있다고 재단하여서는 아니 된다. 각 상황에 맞추어, 과감하게 근로자의 역량과 의지에 일임할 필요가 있다. 노동에 더 많은 몰입과 시간 소비 등에 가치를 두는 노동자는 그 노동의 시간과 비중을 늘릴 수 있게 하고, 효율적이고 압축적으로 노동을 수행하는 근로자는 그러한 단축적인 근로를 수행하도록 하면서, 근로현장에서 폭넓은 재량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종종 근로자들의 노동에 있어서 최저한도를 설정하거나 최대한도를 설정하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가는, 과거 집단생산체제에서 스탈린과 마오쩌둥이 벌였던 생산성 전쟁에서 잘 볼 수 있다. 마치 로마로 가고 있지만 정작 로마 방향에 놓여있지 않다면, 그 자체로 가짜의 노동을 계속 확대하거나 반복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어쩌면 진짜 노동이라는 그 모델(사례)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실례로 우리는 전쟁을 반드시 피하고자 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지, (무형의) 평화를 꼭 달성해야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가짜의 노동을 회피(헷지)하는 노력은 종국에는 진짜 노동의 지향으로 접근하게 해준다.


진짜노동으로 가려면 조직의 정직성을 재확립하고 관리자는 더 많은 책임을 부담해야 하며 직원은 더 큰 자유를 누리가 위하여 협업해야 한다. 어쩌면 노동이라는 것, 관리자로서의 노동이나 직원으로서의 노동에 있어서도 그 노동 ‘본연’의 행동에 충실해질 필요가 있다.


옛시인 두보는 출새곡이라는 ‘병사의 전장(戰場) 노래’를 통해서 이런 말들을 남겼다. “활을 당기려면 강하게 당기고(挽弓當挽强) 화살을 쏘려면 멀리 쏘아야 한다(用箭當用長). 사람을 쏘려면 먼저 그 말을 쏘고(射人先射馬) 적을 잡으려면 먼저 그 대장(왕)을 잡아야 하겠다(擒賊先擒王).” 옛시인은 모든 일에 그 본연과 핵심이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 물론 늙은 병사로서는 더 이상 그러한 기개(氣槪)로 장성 너머의 적(敵)들을 상대하지 못하지만, 병사로서의 본분과 그 역할은 여전히 불변한다는 것을 담담히 말해주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 2000만명이 넘는 근로자들(노동종사자·노무제공자 등 포함)이 일터에서 무수한 노동을 하고 있다. 이들의 노동은 (사용자를 위한) 무언가를 위해서 쓰이거나(희생되거나), (근로자가) 무언가를 누리기 위해서 가장(假裝)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진짜 노동을 위한 여정은 시작되었다. 진짜노동·가짜노동을 연구해 온 인류학자도 그 본질을 탐구하면서 ‘적게 일해야 하는 사회’, ‘스스로 만드는 번아웃의 세계’라는 부제(副題)를 제시하고 있다. 4시간 들여 마치는 일들이 왜 8시간까지 늘려 일을 해야 하는 건지, 왜 사람들은 계속 바쁘다고 하는 것인지, 결국 우리의 노동은 정상적인지... 이러한 부제들을 보면 가짜노동이 만연해질 때 한 사회는 점차 활기를 소진(消盡)하고 미래로의 추동(推動)을 기피하게 된다는 점을 확연히 알 수 있게 한다.


앞으로 우리 노동사회가 또다시 변모하여 가짜노동을 회피하고 노동 본연을 극대화할 때, 대한민국은 다시금 ‘전세계에서 자원도 없고 국토도 좁은 (육지가 분단된) 나라가 인적 자원으로 훌륭한 사회공동체를 만들었노라’라고 선언할 수 있다. 우리가 노동의 본연을 깨닫고 노동을 최고의 가치로 끌어올릴 때이다.


노동이 훌륭한 가치재로서 존재하는 세상. 좋은 비가 내릴 시절이 되었다.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 봄이 되면 자연히 내린다(好雨知時節 호우지시절 當春乃發生 당춘내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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